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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린의 Cool북!] ① 말이 안 통하는 상대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게 정답일까?

  • 기사등록 2024-07-16 09: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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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세대 출판전문가의 속 시원한 독서 솔루션 '황예린의 Cool북!'을 연재합니다. 버라이어티하고 거친 야생의 사회생활로 고민하는 우리에게, 기왕 일하는 거 재밌게 일하고 싶은 현직 출판마케터가 책장에서 찾은 해결책을 처방합니다. 황예린은 '책 읽는 삶이 가장 힙한 삶'이라는 믿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별것도 아닌 문제로 진상을 부리는 갑질 고객들 때문에 한탄하는 자영업자의 이야기, 결혼 준비를 하다 가치관 차이로 싸운 커플의 이야기, 직장에서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 MZ 후배의 만행을 폭로하는 이야기… 자기 세계에 갇혀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SNS에 범람한다. 보통 사람들은 고집쟁이들의 궤변에 애써 참지 말라고 얘기한다. “당신 말이 옳습니다”라고 말하고 ‘손절’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참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만 호구가 되고 스트레스만 받기 일쑤이니 그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관계를 단절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만약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한번 보고 말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 하루 8시간씩 5일을 같이 일해야 하는 직장 상사, 오랜 세월을 알아 와서 형제자매나 다름없는 친구, 집에서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가족이라면? 당장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핸드폰 요금제도 해지하고, 짐을 챙겨 잠적하지 않는 이상 아마 관계를 끊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사람들의 잘못된 말을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완벽히 반박해서 이기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새 사람으로 탄생할 리는 없다. 오히려 자신을 무시한다고 펄펄 뛸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니 자꾸만 의견이 부딪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행히도 현실은 둘 중에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하는 밸런스 게임이 아니다.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황예린의 Cool북!] ① 말이 안 통하는 상대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게 정답일까?


<자기만 옳다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마리테레즈 브라운 지음, 갈매나무)은 고집쟁이, 나르시시스트, 기분파와 대화할 때 물러서지 않으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상대방의 심리를 낱낱이 분석해 때로는 살살 달래고, 때로는 날카롭게 정곡을 찌르며 불리한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상황별 맞춤형 기술 28가지를 준비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술을 달달 외우려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는 없다. 그저 하나의 메시지만 기억하면 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쉽게 나쁜 사람으로 꼬리표 붙이고 서둘러 포기하지 말 것.’


저자는 책을 마치기 전에 서로 생각이 전혀 달랐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단 메릴랜드 지부장이었던 로저 캘리는 어느 날 돌연 KKK단을 탈퇴한다. 지부장까지 맡을 정도로 열성분자였던 그에게 도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그 뒤에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흑인 음악가이자 기자인 대릴 데이비스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대릴이 캘리를 설득한 방법은 논쟁이 아니었다. 그저 캘리의 생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왜 흑인이 백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나요?” 대릴의 질문에는 어떠한 도덕적 우월주의도, 분노도, 미움도 끼어들지 않았다. 캘리의 생각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만남이 계속 이어지며 캘리는 대릴과의 우정을 쌓게 되었고,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스스로 자기 신념의 오류를 깨닫고 혐오라는 아집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계로 나오게 된다.


대릴과 캘리의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갖춰야 할 건 대단한 말발이나 순발력, 혹은 이성적 논리와 같은 기술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진심에 귀를 기울이려는 자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생각이 넘실거리다 못해 흘러넘치는 오늘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가시 돋친 한마디에 휘둘리며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상대를 외면하지 말자.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를 단절해 버리면 남는 것은 좁디좁은 나 홀로의 세계뿐이니 말이다. 닫혀 있던 내 세상의 문을 열고 관심이란 이름의 딱 한 발짝만 더 내디뎌 보자.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나를 지키면서도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길이 생겨날 것이다.


[황예린의 Cool북!] ① 말이 안 통하는 상대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게 정답일까?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wendy19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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