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20만 농업인을 대표하는 제25대 농협중앙회장에 강호동 후보(경남 합천 율곡농협조합장)가 당선됐다.
강호동 후보는 25일 진행된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 24대 회장 선거에서 낙선 후 두 번째 도전에 회장에 당선됐다.
강 당선인이 취임하게 되면 206만 조합원의 수장으로서 농업인 지원은 물론 중앙회 전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특히 중앙회장으로서 농협경제·금융지주 산하의 30여개 계열사, 525조원에 이르는 자산, 약 10만 명의 임직원을 총괄하게 된다. 이른바 '농민 대표'로 거듭나는 것이다.
◆ '재수' 경험 토대로 한 발 빠른 선거 운동 개시
강호동 당선인은 지난 2020년 제24대 협회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1차 투표에서 3위로 패배의 쓴 맛을 맛봐야 했다. 강 당선인은 이 쓴 맛을 잊지 않았다. 실패 원인을 분석해 해결 방안을 모색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결과는 승리였다.
◇강호동 당선자는...
△1963년생(60) △대구 미래대 세무회계과 졸업 △농협대 경영대학원 수료 △경남 합천군 율곡농협 와리지소 부장(1998. 5) △율곡농협 와리지소 지소장(1998. 9) △율곡농협 조합장(2006) △전국친환경농업협의회 이사(2010) △합천군통합체육회 이사(2011) △법무부 법사랑위원 거창지역 연합회 합천지구 회장(2014) △제25대 농협중앙회장 당선(2024.1)
강 당선인은 이번 25대 선거에서 일찍이 선거 캠프를 꾸렸다. 영남지역 출신인 만큼 이름을 가장 먼저 알려 영남 표심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였다. 영남은 표수가 가장 많아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단일화 실패로 23, 24대에 잇달아 낙선한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강 당선인 외에 송영조 부산 금정농협 조합장과 황성보 경남 동창원농협 조합장이 영남권 출신이었다. 특히 송영조 조합장은 강호동 당선인과 호각을 다투는 후보자이기도 했다.
이른 선거 캠프 형성을 통해 발 빠르게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영남을 필두로 전국적으로 다니며 폭넓게 사람들을 만났고, 애경사도 두루 잘 챙겼다. 이를 바탕으로 1차 투표에서 607표를 얻어 압도적 1위에 올랐다. 과반(626표)을 넘지는 못해 2위 조덕현 동천안농협조합장(327표)과 결선투표를 진행했고, 781표를 얻으며 최종 당선됐다.
강호동 당선자가 회장직에 오르게 되면서 영남 지역 후보자가 최원병 전 회장(21, 22대) 이후 8년 만에 농협 회장 자리에 앉게 됐다. 경남 출신으로는 18~20대 회장인 정대근 전 회장 이후 20년 만이다. 영남지역은 표수가 많은 만큼 단일화에 난항을 겪는 지역이었다. 지난 23, 24대 회장 선거에서 영남의 표심이 갈려 영남 출신 후보자들이 모두 선거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강호동 당선인도 24대 선거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그만큼 영남 출신 출마자는 고향 땅 표심을 잡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 '무이자 20조 지원' 등 파격 100대 공약으로 농·축협 경영 부담↓
강호동 당선인이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가면 현 농협 체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 당선자는 후보자 시절부터 ‘변화와 혁신’을 앞세워 표심을 끌어 모았다. 특히 대표적 공약인 '지역농·축협 경제사업 활성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지역 농축협을 위한 무이자자금 20조원을 조성할 것을 약속했다. 무이자자금 지원을 통해 농·축협 자부담도 완전히 없애 경영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이다.
또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회와 하나로유통, 농협홍삼, 남해화학 등을 보유한 경제지주의 통합을 제시했다. 농협은 지난 2012년 중앙회·경제지주·금융지주 구조로 개편됐었는데, 10여년 만에 재통합이 추진되는 것이다. 중앙회와 경제지주가 통합되면 중앙회 산하에 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을 보유한 금융지주만 남게 된다. 다만 중앙회 지배구조 개편은 농협법 개정 사안이다.
이밖에도 강 조합장은 △이사회에서 조합장 보수 결정 △연봉 하한제와 특별 퇴임 공로금 제도 △도시 농축협 경제사업 활성화 △농업인력 문제 해소 △도시·농촌 농축협간 상생 추진 등 100대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 '농가소득 안정·금융 혁신' 등은 과제
강호동 당선자 앞에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농협 수장으로서 농가소득 안정과 금융 혁신이라는 과제를 대면하게 된다. 농가 소득은 지난 2013년 3452만원에서 2022년 4615만원으로 10년 새 1000만원 넘게 늘었지만, 농업외 소득이나 이전소득을 제외한 순수한 농업소득은 1000만원(948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오히려 10년전(1003만원)에 비해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바로는 농협 전체 조합원 중 56만3000명이 채무를 지고 있으며, 이들의 총 부채액은 78조4000억원에 달했다. 1인당 평균 대출액이 1억2500만원에 이르는 셈이다.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농업 생산비가 늘어 농사를 지으면 도리어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업계에서는 금융 혁신도 함께 강조되고 있다. 농협금융지주는 금융권의 큰 손이다. 지난 2022년 자산규모는 524조원, 당기순이익은 2조2309억원에 달한다. 중앙회 상호금융도 1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빚에 허덕이는 조합원들이 많다.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외에도 경쟁 후보자 포섭, 연임법 확정 여부 등 향후 농협의 운명이 달린 굵직한 안건들이 강 당선인의 책상에 놓여 있다. 선거에서 선의의 경쟁을 했던 타 후보자들과 최소 4년간 함께 농협중앙회를 이끌어야 한다. 껄끄러운 관계는 경영계에서는 백해무익이다. 수장이 된 현재 불태웠던 경쟁심을 잠재우고 그들을 포섭할 차례다. 또 앞서 이성희 현 회장이 추진했지만 불발된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포함 농협법 개정안을 재추진할 지도 관심이다. 강호동 당선인이 회장 임기를 본격화하고, 농협법 개정 필요성과 공약에 부합하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