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가 열리고 있는 경기 성남 서울공항.
셔틀버스에서 내리자 새파란 하늘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곡예비행이 방문객들을 반겨줬다. 에어쇼를 뒤로 하고 출입구로 들어서자 전시장은 방산업체들의 전투 시스템을 들러보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특히 인파가 몰리는 곳이 있었다. 하얀 배경과 태극기가 띄워진 스크린, 은은한 파란색 조명과 ‘다족보행로봇’이 반겨주는 현대로템 전시관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폴란드향 수출로 효자품목 자리매김에 성공한 ‘K2전차’의 수출형 성능개량 콘셉트 모델 ‘K2EX’도 최초로 공개됐다.
현대로템(대표이사 이용배)이 최근 K2전차를 대표로 하는 방산부문에서 수출고를 올리며 방산 수출의 키플레이어로 거듭나고 있다. 기존 주력 사업인 철도 부문에서도 차세대 열차의 압도적인 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연이은 수출 및 국내 수주를 이어가 10조원의 수주고를 확보했다.
◆올 상반기 영업익 991억…전년동기比 80.18%↑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로템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1조6713억원, 영업이익 991억원, 당기순이익 70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각각 14.22%, 80.18%, 82.90% 증가했다. 사업부문 중 디스펜스솔루션 부문이 전년동기(4101억원) 대비 82% 증가해 7444억원을 기록한 덕분이다.
현대로템의 사업부문은 레일솔루션, 디펜스솔루션, 에코플랜트 등 크게 3가지로 구성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레일솔루션 부문은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 9221억원에서 7617억원으로 소폭 내려앉았지만 디펜스솔루션 부문이 4101억원에서 7444억원으로 퀀텀점프해 투톱(two-top) 구도를 구성했다.
이 같은 실적은 11대의 K2전차 납품의 매출 인식 덕분이다. 현대로템의 디펜스솔루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전차, 장갑차, 미래무기체계로 구성되는데, 그중 전차에 속하는 K2는 K1전차의 후계 기종으로 개발돼 지난 2014년부터 국군에서 실전 배치중이다. 구릉이 많은 한반도의 작전 환경상 장갑과 화력, 기동성 같은 통상적인 성능도 뛰어나지만, 타 국가들의 주력 전차에 비해 자동 장전 장치나 전자장비에 특히 공을 들여 호평을 받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도 이 점을 주목해 지난해 180대 인도분에 대한 1차 계약을 체결했다. 총 4조4992억원 규모의 K2전차 공급 본계약으로, 그중 11대가 지난 2분기 매출액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어 3분기에 7대의 인도가 추가적으로 반영될 예정이고, 내년 56대, 25년 96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폴란드향 2차 계약은 물량은 기존 820대에서 180대로 축소되었으나, 이는 금융지원 수준에 대한 협의에 따른 불가피한 조정으로 잔여물량은 추후 계약을 통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방산 및 플랜트 부문에서 기록적인 실적 증가를 이뤄냈지만 철도 부문의 국내 전동차 대규모사업 종료의 영향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는 아쉽게 이루지 못했다”며 “다만 인력채용, 설비투자 등의 투자를 감안하면 원가 부담은 점차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철도 실적도 양호…철도 수주액 10조
현대로템이 K-2 전차 수출로 방산부문서 쾌재를 부르는 가운데 주력사업인 철도 부문도 역대 최대 수주 성과를 내며 업계 관심을 불러오고 있다. 국내외에서 잇달아 1조원대 철도 사업 수주 소식을 전하면서 탄탄한 본업을 기반으로 방산 확대의 기틀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어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해 수소 사업을 확장해 수소에너지 기반의 철도 ·방산 제품군의 포트폴리오를 노리겠다는 목표다.
현대로템의 2분기 철도부문 수주잔고는 6조7533억원이다. 지난 1분기(5조4395) 대비해서 24.15% 급증했는데, 이는 호주 퀸즐랜드주 정부가 발주한 전동차 공급 사업 수주의 성과다. 총 14편성, 112량 규모의 신규 수소전기트램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향후 15년간의 유지·보수도 담당한다. 총 사업 규모는 1조2164억원으로, 역대 해외 철도 사업 중 최대 규모를 경신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4월에는 1조원 규모의 수서발 고속철도(SRT) 신규 고속열차 사업의 최종 적격자로 선정됐다. 낙찰 금액은 차량 구매가격과 정비비용으로, 각각 5255억원, 4750억원의 수주고를 올렸다. 1단계 기술평가에서 기술점수 87.5점(기준점 85점)을 받아 통과한 반면, 전동차 시장 1위 우진산전은 스페인 탈고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지만 기술평가 부문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이어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 철도 인프라 사업 등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쉬쿠라코프 바실리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제1차관은 경남 창원에 위치한 현대로템 공장을 방문했다. 현대로템은 2010년 우크라이나에 고속철 90량을 수출한 전력이 있고, 우크라이나 현지 발주처(URSC· Ukraine Railway Speed Company)와 두 차례(2015년, 2017년)에 걸쳐 유지보수 연장 계약을 맺었다. 24시간 유지보수 비상 대응 체계, 첨단 유지보수 관리 시스템(MMIS) 구축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또 지난 7월 한국-우크라이나 양국 정상이 공동으로 발표한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에 따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재건협력단에 참여해 추가 사업 협력에 대해 모색 중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예측하는 재건사업의 규모는 9000억달러(약 1200조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레일 KTX에 이어 SRT 발주, 호주 수소전기트렘, 우크라 철도재건사업의 선두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재 독보적으로 업계를 장악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현대로템 이외에는 차세대 열차를 제작해본 경험이 없어 사실상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전했다.
◆이용배 대표, 3년 연속 최대 실적 이끈 재무전문가
이용배 대표이사는 현대차그룹에서 ‘재무통’으로 불린다. 취임 첫해인 2020년 흑자전환한 데 이어 3년 연속 영업이익 증가와 부채비율 감소, 차입금의존도 등의 재무구조 개선으로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현대로템은 철도 차량을 저가에 수주한 영향으로 지난 2018년과 2019년에 총 4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2019년 말 부채비율은 362.6%까지 증가했고, 다음해 취임한 이용배 대표는 즉시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해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이어 비상경영위원회를 구성해 수익성 개선, 부동산 매각, 조직문화 개선, 사업역량 등을 지시했다. 동시에 기존 38개 실을 28개로 축소하고, 임원 수도 기존 대비 20% 줄였다.
2021년 70억달러(약 9조4400억원), 지난해 170억달러(약 22조9200억원)를 기록해 점점 증가하는 방산 부문으로 눈을 돌렸다. 의존도가 높은 철도사업의 비중을 낮추고, 선별수주를 실시해 방산 해외 포트폴리오 확장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폴란드 대형 계약 성공으로 약 1000대의 잠정 수주에 성공했고, 180대의 1차 계약 물량의 매출 인식으로 지속된 적자로 쌓였던 결손금을 모두 털어냄과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확보했다.
이용배 현대로템 대표는 1961년생으로현대정공(전 현대모비스) 경리과 입사로 현대그룹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현대차 경영기획담당과 경영관리실장, 기획조정3실장, 현대위아 기획·재경·구매·경영담당을 지냈다. HMC투자증권 영업총괄담당 부사장을 거쳐 현대차증권 대표이사를 지낸 후 2020년 3월 현대로템 대표이사에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