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을 차단하고 대한민국을 G7에 올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진행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임시총회.
류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신임 회장이 취임사를 낭독하자 기자들의 셔터소리가 쏟아졌다.
류진 회장이 첫 수장으로 이끌게 된 한경협은 전국경제인엽합회의 새 이름으로 지난 1961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등 기업인 13명이 설립했다. 1968년 전경련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까지 사용해 왔다. 55년만에 이름을 바꾼 한경협은 CSIS(국제전략연구소) 같은 ‘한국판 싱크탱크’의 역할을 목표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방향성을 제시했다. CSIS는 미국 워팅턴에 소재하는 중립적 성향의 싱크탱크로,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 연구소’,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 재단’과 함께 3대 기관으로 불린다.
이날 총회에는 재계 인사들이 총 출동했다. 류진 회장을 비롯해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이한장 종근당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구자은 LS 회장, 이희범 부영주택 회장 등이 참석했다.
◆류진 신임 회장, "윤리 경영으로 국정농단 소지 원천차단할 것"
류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G7 대열에 당당히 올라선 대한민국을 목표로 삼겠다”며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류진 회장은 풍산그룹 회장이다. 풍산그룹은 구리 및 구리 합금소재와 가공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신동사업 및 각종 탄양류를 생산하는 방산산업을 영위하는 중견기업으로, 재계 70위권에 위치해 있다. 전경련의 회장을 하기에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미국통’으로 국내에서도 여야 정치인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역대 정권에서 한미 정부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지속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일가와 선친인 류찬우 회장 때부터 인연을 맺었고, 201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류진 회장을 ‘소중한 친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CSIS 선임연구원으로 갈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헤리티지 재단 보다 CSIS의 중도적 성형이 한경협에 더 잘 맞다고 보기 때문에 향후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 한국경제인협회가 앞장설 것”이라며 “한국경제 글로벌 도약의 길을 열고, 국민과 소통으로 신뢰받는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경련이 과거 정경유착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는 것과 관련, 류진 회장은 “국정농단 과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투명한 윤리경영을 정경유착 차단과 기업문화 재정립에 한경협이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경협은 정경유착 등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인 윤리위원회 설치를 정관에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또 위원 선정 등 윤리위원회 구성과 운영사항 등 시행세칙 마련은 추후에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또 사무국과 회원사가 지켜야할 ‘윤리헌장’도 이 날 총회에서 채택했다.
다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지도부에 관해 여러 잡음이 생겨나고 있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고문으로 선임되면서 경제인이 아닌 정치인 출신 중용이 정경유착 근절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는것 아닌가 하는 재계의 우려다. 또 상근부회장에 김창범 전 주인도네이사 대사가 선임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경제 단체에 경제인이 없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류진 한경협 회장은 “우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직업 보다 사람 자체를 보고 판단하려 한다"며 "과거에는 전부 다 경제계 쪽에서 왔지만 보다 다양한 분야를 쓰는 것 역시 그 자체의 변화이기에 6개월 후 결과를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4대 그룹, 한경협 회원지위 승계…7년만에 복귀
한경협은 지난 5월 18일 발표한 혁신안을 이행하기 위한 ‘전경련과 한경연 간 통합합의문’을 이날 채택함으로써 기존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직, 인력, 자산, 회원 등을 모두 승계해 글로벌 싱크탱크로 거듭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번 통합의 결과로 4대 그룹(삼성·SK·현대자동차·LG)도 새 단체 한국경제인협회 회원이 됐다.
4대그룹 합류 과정에서 한경협의 별도 압박이나 승계 유도는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류진 회장은 “4대그룹 합류는 각 기업이 필요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고, 결정에 많은 고민을 거쳤을 것”이라며 “굉장히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과거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기에 반복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단체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4대 그룹 중 삼성 계열사인 삼성증권은 ‘합류 불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이사회를 열고 한경협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기로 최종 결론지었다. 재가입 거부는 4대 그룹 계열사 중 처음이고, 정경유착 우려를 제시한 심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안을 검토한 결과 내부 반대 의견이 높아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이로써 삼성증권을 제외한 4대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회원 승계에 거부하지 않으면서 7년만에 복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