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이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SMIC에 대해 수출 규제를 결정했다. 이에 ‘반도체 굴기’를 추진해온 중국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기업들의 귀추가 주목된다.
29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각) 자국 반도체 소재·장비 업체들에게 공문을 보내 “SMIC에 특정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지했다.
이번 조치로 SMIC는 미국 정부의 관리를 받는 '기업 목록(Entity list)'에 이름이 올랐다. 미 상무부는 SMIC에 제품을 수출하면 중국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SMIC는 “중국 군대와는 관계 없이 민간, 상업 목적으로만 서비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이제 미국 기업들은 SMIC와 거래하려면 자국 상무부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SMIC는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 기업임에도 최근 2년간 영업손실을 기록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매출액 37억달러, 영업이익 1억5000만달러로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SMIC의 최대 고객은 전체 매출에서 18.7%를 차지하고 있는 화웨이다. 이어 퀄컴(8.6%), 브로드컴(7.5%), ON 세미(3.5%), 코보(2%), 싸이프레스(1.2%) 등이다. 화웨이는 앞선 미국의 제재로 대만 TSMC와의 거래가 끊기면서 SMIC를 대안으로 삼으려 했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연이은 제재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육성을 저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라는 명목 아래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잡고 SMIC를 집중 지원해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MIC는 올해 2분기 글로벌 시장점유율 4.8%로 5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1위는 대만의 TSMC(51.5%)이며 이어 삼성전자(18.8%),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 대만 UMC 등 순이다.
박상범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SMIC가 대규모 CAPEX(설비투자)를 통해 선두 파운드리 업계를 추격하는 구도에서 핵심 미국 장비 수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중국 반도체 굴기 역시 차질이 생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제재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볼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파운드리 시장에서 잠재적 경쟁자인 SMIC를 따돌리고 점유율을 높여갈 수 있다. 아울러 SMIC의 고객사들이 삼성전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SMIC와 거래관계 있는 일부 고객들의 점진적인 SMIC 이탈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의 이러한 중국 반도체 때리기는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한 전략에 따른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을 뒤돌아 웃게 만드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중∙저가용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에게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 경우 DB하이텍(000990),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 등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연구원은 “최근 파운드리 CAPA(생산능력)가 부족한 상황에서 SMIC 증설 차질로 국내 파운드리 업계가 반사이익을 받을 것”이라며 “특히 DB하이텍은 SMIC와 사업 영역이 겹친다는 점에서 수혜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