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허영인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인 SPC삼립(이하 삼립)을 부당지원한 SPC그룹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647억원을 부과했다. 실제로 아무 역할이 없는 계열사를 거래 과정에 끼워넣는 ‘통행세’로 부당 이익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과징금 부과와 별개로 총수인 허영인 회장과 경영진, 해당 법인 등을 형사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대해 SPC 측은 총수가 의사결정에 전혀 관여한 바 없음을 충분히 소명했으나 과도한 처분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공정위의 이번 제재 수위는 일감몰아주기의 처벌 근거인 부당내부거래로 부과한 과징금 규모 중 사상 최대 수준이다. 부당내부거래 관련 종전 사상 최대 과징금 기록은 지난 2007년 현대차그룹의 630억원대 과징금이었다. 647억원의 과징금 규모는 2020년 들어서 공정위가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부과한 과징금 중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과징금은 ▲파리크라상 252억원3천700만원 ▲에스피엘 76억4천700만원 ▲비알코리아 11억500만원 ▲샤니 15억6천700만원 ▲삼립 291억4천400만원이 부과됐다.
공정위는 29일 SPC의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하고 통행세 거래에 직접 가담한 허영인 총수와 조상호 전(前) 그룹 총괄사장, 황재복(現파리크라상 대표이사) 등 총수와 경영진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파리크라상, SPL, 비알코리아 등 3개 법인도 고발한다.
이에 대해 SPC 관계자는 "판매망 및 지분 양도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적법 여부에 대한 자문을 거쳐 객관적으로 이뤄졌고, 계열사 간 거래 역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직계열화 전략"이라며 "삼립은 총수일가 지분이 적고, 기업 주식이 상장된 회사로 승계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향후 의결서가 도착하면, 면밀히 검토해 대응 방침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SPC그룹은 총수인 허영인 회장 보고를 거쳐 그룹 차원에서 부당지원을 실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통행세 거래 ▲밀다원 주식 저가양도 ▲판매망 저가양도 및 상표권 무상제공 등의 방식이 동원됐다. 공정위는 이같은 방식으로 총수 일가 지배 회사인 삼립에 7년간 417억원의 부당지원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삼립은 지주사인 파리크라상과 허영인 회장, 허 회장의 장남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 차남 허희수 등 허영인 일가가 전체 지분의 7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SPC계열사들은 이른바 ‘통행세’ 거래를 통해서는 약381억원을 삼립에 지급했다. 파리크라상, SPL, 비알코리아 등 제빵계열사가 밀다원, 에그팜 등 8개 계열사가 생산한 밀가루, 액란 등 제빵 원재료를 구매하는 거래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이 없는 삼립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통행세 거래는 지난2013년부터 2018년까지 지속됐다.
이같은 부당지원 행위에 총수와 경영진도 개입했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허영인 회장은
그룹 주요 회의체인 주간경영회의 등에 참석해 의사결정을 했고, 부당지원행위 조사가 시작되자 통행세 거래가 발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은폐를 시도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조상호 전 사장, 황재복 대표이사등 소수 인원이 주요 계열사 임원을 겸직하면서 결정사항을 집행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통행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SPC는 2012년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밀다원 주식을 정상가격(404원)보다 훨씬 낮은 주당 255원에 삼립에 양도했다. 삼립에 약 20억원을 지원한 것이다. 삼립이 밀다원 주식 100%를 보유하면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제외되고, 삼립을 중심으로 한 통행세 거래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식을 싼값에 양도한 것이다.
지난 2011년 삼립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통합한 것도 부당지원행위의 일종으로 규정됐다. 양산빵 시장 점유율 1위이던 샤니가 아닌 삼립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통합했기 때문이다. 샤니가 .양산빵 공급하는 제조공장 역할을 수행하게 됐고 삼립이 점유율(73%) 1위 사업자가 됐다.
SPC는 이런 ‘수직적 계열화’를 내세워 삼립을 중심으로 한 통행세 구조를 합리화했다. 샤니는 판매망을 정상가(40억6000만원)보다 저가(28억5000만원)로 삼립에 양도하고 상표권을 8년간 무상으로 제공해 총13억원을 지급했다.
계열사들이 삼립을 지원한 이유는 그룹 승계작업을 위한 것이라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삼립 주식가치를 높여 2세들이 보유한 지분을 사실상 지주회사인 파리크라상에 현물출자하거나 파리크라상 주식으로 교환하는 등 방법으로 파리크라상 2세 지분을 높이는 방식이다. "SPC는 사실상 지주회사인 파리크라상(총수일가 지분율 100%)을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라 경영권 승계를 위해 파리크라상의 2세 지분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