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금리가 0%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은행의 예·적금액은 오히려 증가하는 이례적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예금금리가 낮아지면 부동산, 채권, 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오히려 은행에 돈이 몰리는 이번 현상을 놓고 디플레이션의 전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7월 은행권 정기예금 잔액, 지난해말 대비 44조↑
한국은행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전체 은행권의 정기예금 잔액은 712조672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정기예금 잔액이 668조4456억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만 44조2270억원이 은행 정기예금에 쏠렸다. 자금순환표란 일정 기간에 발생한 자금의 흐름을 경제주체와 금융자산별로 기록한 것으로 금융시장의 '머니무브'(Money move)를 엿볼 수 있다.
더밸류뉴스가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추이를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의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은 11조5541억원 증가했다. 이는 직전 달인 7월(8조6377억원)보다 3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의 정기예금은 각각 1조4195억원, 3조7404억원 늘었고, 우리은행(2조3511억원)과 NH농협은행(3조448억원)도 급증했다.
◆ 예금·적금 금리는 속속 ↓
이처럼 은행예금에 돈이 몰리는 것은 금리가 속속 인하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2일부터 일부 수신상품 금리를 최대 0.25% 포인트(p) 하향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2일부터 수신상품 금리를 최대 0.30%포인트 인하했는데 추가로 금리를 낮춘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 정기예금 상품의 1년제 금리는 1.30%에서 1.10%로, 3년제 정기예금 금리는 1.45%에서 1.20%로 낮아졌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전과 비교하면 1년제 정기예금 금리는 0.40%포인트, 3년제 정기예금 금리는 0.50%포인트 각각 떨어졌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23일 추가 예금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우리은행의 '우리 SUPER주거래 예금' 1년제 금리는 종전 1.60%에서 1.50%로 0.10%포인트 내렸고, '스무살우리 적금' 1년제 금리는 2.60%에서 2.30%로 0.30%포인트 낮아졌다. '우리 SUPER주거래 예금'은 지난달 한차례 금리가 0.30%포인트 인하됐는데 추가 하락분을 감안하면 금리가 총 0.40%포인트 낮아졌다.
이 밖에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도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후 최대 0.40%포인트 안팎으로 수신상품 금리를 조정했다.
◆ "경기악화, 불안심리 반영"
물(water)이 더 낮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흐른다면 돈(money)은 자신을 불려주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다니는 속성을 갖고 있다. 예금금리가 떨어지면 주식, 채권, 부동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왜 1% 수준의 초저금리에도 돈은 예금으로 몰리는걸까?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는 경기침체, 디플레이션 우려 같은 불안 심리가 반영돼 있다고 보고 있다. 연광희 신한은행 PWM잠실센터 팀장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제조업 체감경기 하락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같은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 예·적금에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최근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는 만큼 특별한 모멘텀이 없는 한 단기적으로는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렇지만 불안심리에 휩싸여 마냥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은 합리적인 재정 관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도정 에셋디자인 투자자문 대표는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위기는 언제나 기회였다"며 "두자리수 이자율이 가능한 배당주도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