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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행동주의 몰려온다] ①토종 KCGI는 왜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목 받는 걸까

  • 기사등록 2019-01-07 08: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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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정호 기자]

“주주행동주의로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면 투자자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해당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에도 기여할 수 있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가 지난해 12월 26일 한진칼의 지분을 두자리수(10.81%)로 늘리면서 발표한 보도자료의 일부 내용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는 이날 한진칼의 지분을 9.00%(532만2666주주)에서 10.81%(639만6822주)로 1.81% 포인트 늘렸다. 그레이스홀딩스는 KCGI의 투자목적회사이다. 


KCGI의 한진칼 지분 보유 공시 내용(일부).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이로써 KCGI는 한진칼의 2대주주가 됐다. 7일 기준 한진칼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조양호 및 특별관계자가 29.0%로 최대주주이고, 그레이스홀딩스(10.81%), 국민연금(8.45%), 크레디트스위스 AG(5.0%) 순이다. 한진칼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 KCGI의 한진칼 지분 매입으로 주주행동주의 본격화


2019년 새해 벽두 자본시장에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명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는 올 한해 한국의 자본시장에 주주행동주의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성=더밸류뉴스]

KCGI는 보유목적에 대해 "장래에 회사의 업무 집행과 관련한 사항이 발생할 경우에는 관계법령 등에서 허용하는 범위 및 방법에 따라 회사의 경영 목적에 부합하도록 관련 행위를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한진칼의 경영에 대해 주요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한진칼의 경영진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진칼은 KCGI가 지분을 늘리자 지난달 5일 단기차입금 1600억원을 늘린다고 공시했다. 


차입금이 늘면서 한진칼의 자산은 1조9134억원에서 2조734억원으로 늘어난다. 자산이 2조원을 넘으면 상근감사가 감사위원회로 바뀌며, 최대주주 의결권에 변화가 생긴다. 


다시 말해 자산 2조원 이하일 경우에는 상근감사 선출방식에서 3% 룰(Rule) 적용시 조양호 등 특수관계인은 3% 의결권만 행사가 가능하다. 반면 감사위원회 방식으로 바뀌면 개별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약 12%(조양호 3%, 자녀3명 각 2.3%씩 6.9%, 인하학원 2%)의 권한 행사가 가능해진다. KCGI 측은 동일하게 3%다. 

한진칼의 이번 차입금 증가가 KCGI측이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방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CGI는 이번 한진칼 지분 증가로 한국 자본시장에 주주행동주의 논의를 본격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추진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란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과거 배당이나 시세차익만 추구하던 소극적 투자에서 벗어나 구조조정, 부실책임 추궁, 경영투명성 제고 등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며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행동주의 계보는 2006년 '장하성펀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액주주 운동에 적극적이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이후 전 청와대 정책실장)가 라자드자산운용이 출시한 한국지배구조펀드 투자 고문을 맡으면서 태광산업 대표이사 해임 소송 등에 나서면서다. 그때만 해도 소버린, 헤르메스, 칼아이칸 등 외국계 자본의 전유물이던 주주행동주의가 토종 자본과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로 자본시장 침체를 겪으며 행동주의 기류도 주춤해졌다. 그 후 2016년 라임자산운용이 의결권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와 함께 '라임-서스틴 데모크라시'를,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행동매주식전문투자형펀드'를 출시하는 등 최근 들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가 느는 추세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운용사 수는 501개사로 2012년 말 226개사 대비 122% 증가했다. 규모 역시 크게 늘어 66조원 수준이다.


한국 자본시장에 주주행동주의가 등장한 것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후진성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배경으로 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배구조 유효성이나 소수 주주 보호 측면에서 한국은 130개국 중 100위"라며 "글로벌 수출력이나 경제력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욱 한국밸류 10년투자주주행복펀드 매니저는 "국내 기업의 배당성향이나 배당수익률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특히 '주주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고 창업주 일가나 경영진 본인을 위해 회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소액주주들의 감시나 견제 목소리는 낮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주주행동주의, 필요성에는 공감


KCGI에 앞서 한국 자본시장에 주주행동주의를 알린 토종 펀드는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 인프라본부이다. 


플랫폼파트너스는 지난해 9월  맥쿼리인프라 지분 3.17%를 사들인 뒤 운용보수 인하를 요구했다. 급기야 자산운용사 교체를 안건으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맥쿼리인프라의 전체 주주 가운데 31.1%만이 운용사 교체 안건에 찬성해 안건은 부결됐지만, 플랫폼파트너스의 도전은 국내 행동주의 역사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주주행동주의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 자본시장 업계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상장기업 체질을 변화시켜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고 고수익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석 메리츠자산운용 상무는 "사실 주주행동주의는 총수 일가의 독단적 경영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을 견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행동주의 펀드는 경영권을 빼앗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비합리적 의사 결정을 바꿔 보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 역시 "한국 경제가 역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의 테마는 핫한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증시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기업이 효율성 있게 바뀌어야 밸류에이션이 올라갈 수 있다"고 평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주주행동주의의 필요성이나 정당성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한다"며 "하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지배구조가 과연 무엇인지, 행동주의 펀드들이 자신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주장하는지 여부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잠깐] KCGI는... 


기업 승계와 지배구조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목표로 하는 국내 독립계 사모펀드로 강성부 전 LK파트너스 대표가 지난해 7월 설립했다. KCGI는 '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의 약자이다. 


설립 한달 만에 16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투자처가 정해지지 않은 펀드)를 조성했다. KCGI는 홈페이지를 통해 "투자를 통해 국내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명(mission)을 갖고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를 제고하면서 투자자에게는 투자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투자 대상 기업의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강성부 KCGI 대표

강성부 대표는 신한금융투자에서 글로벌자산전략팀장(애널리스트)으로 일했고 2015~2018년 LIG그룹 사모펀드(PEF)인 LK파트너스 대표로 일하다 지난해 8월 KCGI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면서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이라는 의견을 밝혀왔다. 


bjh@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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