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산업부장
트럼프 '해방의 날'은 한국 수출의 블랙데이로 기록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선언한 상호관세는 한국 경제에 25%라는 무거운 짐을 지웠다. 베트남 46%, 중국 34%, 대만 32%, 일본 24%라는 차등적 관세 부과는 미국의 전략적 계산이 담긴 결정이다. 백악관이 모든 수입품에 10%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60여 개국에 추가 관세를 얹는 이 조치는 글로벌 경제 지형을 뒤흔들 잠재력을 지닌다.
미국행동포럼 창립자 더글러스 홀츠-이킨이 "엄청난 불안감이 존재하며 경기 침체의 진정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골드만삭스가 "12개월 경기침체 확률을 35%로 상향 조정했다"는 판단 역시 이 위기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준비 부족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밝힌 바와 같이 제조기업 60.3%가 영향권에 있으나, 20.8%는 아직 대응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한 실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를 선언하고 있다. [자료=유튜브 중계]3일 오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긴급 '경제안보전략TF' 회의를 소집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으나, 사태의 본질을 고려하면 이미 후속 대책은 뒷북에 불과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선고일을 하루 앞두고 관세 폭탄까지 맞닥뜨린 한국 경제는 전무후무한 이중고에 직면했다. 국가적 리더십 공백과 통상 전쟁이 동시에 펼쳐지는 이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 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단기적으로는 관세 협상력을 제고하고, 장기적으로는 업종별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하는 투트랙 전략이 시급하다. 글로벌 무역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이 시점에서, 국가적 위기 대응체계의 구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 제조업 비중 28%→17% 급감, 트럼프의 '관세 처방전' 세수 효과 노린다
트럼프는 무역 적자를 미국 경제의 근본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백악관이 발표한 행정명령에서 그가 "양국 무역 관계의 상호성 부족, 서로 다른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 미국의 대규모의 지속적인 연간 상품 무역 적자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임금과 소비를 억제하는 미국 무역 파트너들의 경제 정책 등이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은 그의 경제 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하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라는 강력한 법적 수단을 동원한 것은 그의 단호한 의지를 반영한다.미국과 주요 15개 교역국의 평균 관세율. [자료=WTO]
역사는 종종 반복된다. 1971년 닉슨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와 함께 10% 일괄 관세를 부과했던 전례가 있다. 닉슨은 적성국가 교역법을 활용해 이 조치를 약 4개월 동안 유지했고, 상대국들의 화폐 절상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현 전략을 닉슨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관세 정책의 이면에는 미국의 치밀한 계산이 존재한다. 현재 미국 세수에서 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1.6%(2024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적용되면 향후 10년간 약 8,700억 달러의 추가 세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편 관세 10%만으로도 10년간 약 2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추가 세수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핵심 목표는 제조업 부흥에 있다. 미 상무부의 통계가 보여주듯, 2001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제조업의 세계 생산량 비중은 28.4%에서 17.4%로 급감했다. 해외로 제조 기업들이 이탈하면서 미국 내 일자리는 감소하고, 무역 적자는 증가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행정명령에서 트럼프가 "1997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은 약 5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잃었다"라고 강조한 것은 미국 산업 경쟁력 회복에 대한 그의 절박함을 드러낸다. 미국 내 인건비 상승으로 값싼 외국인 노동력이 대체되면서 외국 태생 노동자 비중이 2023년 18.6%로, 전년 대비 0.5%p 상승한 현실은 트럼프에게 이민자 유입보다 미국 내 제조업 활성화가 더 시급한 과제로 다가왔을 것이다.미국과 무역 불균형 지속 15개 국가. [자료=BEA] IMF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는 "미국의 관세가 불안을 야기하고 있지만,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극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다소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으나, 골드만삭스는 경기침체 확률을 대폭 상향 조정하면서 "낮은 성장 전망, 신뢰도 하락, 경제적 고통을 감내할 의지가 있다는 백악관 관리들의 발언"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관세 정책의 파급력에 대한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25% 관세 폭탄, 한국 배터리·자동차 '직격탄'...국내 제조업 60%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선언 과정에서 한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에 대해 예상을 뛰어넘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백악관 발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는 한국이 "환율 조작 및 무역 장벽을 포함해 5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하며, 이 수치를 근거로 25%의 관세는 오히려 "할인된 수치"라는 역설적 논리를 전개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일본과 다른 매우 많은 나라가 부과하는 모든 비(非)금전적 (무역)제한이 문제"라는 비판은 관세를 넘어선 무역 관행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브리핑에서 "우리의 최혜국대우(MFN) 관세율은 3.5%지만 한국은 13%"라며, 특히 "소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같은 우리의 많은 농산물을 전면 금지한다"고 덧붙였다.국내 기업 업종별 관세 영향. [자료=대한상공회의소]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이 지속된 약 15개국을 '더티 15'로 명명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의 "이들 국가는 우리 무역량의 엄청난 양을 차지한다"는 발언과 '전체 1조 달러 무역 적자'를 언급한 것은 미국의 관세 정책이 특정 국가가 아닌 체계적인 무역 재균형화를 겨냥한 것임을 시사한다. 미국 통계청 자료상 한국이 올 1월 수입 규모 기준 10위(전체 물량 중 3.4%)를 기록하고, '더티 15' 차트에서 55억4000만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위치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에 적용되는 관세 체계는 정교하다. 5일부터 시행되는 기본 관세 10%와 9일부터 시행되는 국가별 상호 관세 25%로 구성되며, 기본 관세는 상호 관세로 대체되어 최종적으로는 25%의 관세가 적용된다. 다만 구리, 의약품, 반도체, 목재 제품, 특정 중요 광물, 에너지 제품 등이 면제된다. 또한 철강과 알루미늄(25%, 3월 12일 부과), 자동차 및 부품(25%, 3월 26일 부과)은 별도 관세가 적용되므로 상호관세 대신 이미 부과된 관세만 적용된다.한국에 적용되는 미국 관세 체계. [이미지=더밸류뉴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는 업종별 영향의 현저한 차이를 드러낸다. 배터리(84.6%), 자동차·부품(81.3%), 반도체(69.6%), 의료정밀(69.2%), 전기장비(67.2%) 순으로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한국 전체 수출의 46%가 미국 시장을 향하고 있으며, 타국 생산공장 수출 물량까지 감안하면 이보다 9~10% 더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 수익성이 높은 이 시장에서의 타격은 산업 전반에 심각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들의 우려는 구체적이고 다층적이다. '납품물량 감소'(47.2%)가 최대 우려사항이며, '수익성 악화'(24.0%), '가격경쟁력 하락'(11.4%), '부품·원자재 조달망 조정'(10.1%) 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에 직접 수출하지 않는 기업도 간접적 영향권에 놓인다는 점이다. 대한상의 김현수 경제정책팀장은 "미국 관세가 현실화되며 대미 수출뿐 아니라 중국의 저가공세 등 간접영향까지 더해져 경영상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해방의 날', 한국 제조업 '혁신의 날'로 전환해야...관세 쇼크 적극 대응 '요망'
업계의 대응은 아직 제한적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동향 모니터링 중'(45.5%), '생산코스트 절감 등 자체 대응책 모색 중'(29.0%)이 대부분이며, '현지생산이나 시장다각화 모색'(3.9%)은 미미하다. 심지어 '대응계획 없다'(20.8%)는 기업도 상당하다. 중소기업 4곳 중 1곳(24.2%)은 대응계획이 없어 소부장 분야 중소기업의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미국 관세에 대한 제조기업 대응 현황. [자료=대한상공회의소]
해외에서는 다각적인 대응책이 모색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강력한 맞대응을 예고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의견이 엇갈린다. 유럽연합이 미국산 버번 위스키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산 와인에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주요 생산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이에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는 "무역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합의를 모색하겠다"는 온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아일랜드도 강경 대응에 반대하며 EU의 통일된 대응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반면 캐나다는 "국제 무역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보복 조치를 시행 중이다.
한국의 전략적 대응은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 관세 정책의 허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제품 가치의 최소 20%가 미국산인 경우 상호관세는 미국산이 아닌 부분에만 적용된다는 규정은 주목할 만한 틈새다. 로펌 와일리 라인의 파트너 그레타 페이쉬가 "새로운 관세가 빠르게 인하되거나 보류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은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지난 2월 미국이 멕시코와 캐나다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한 달간 중단한 전례는 협상 가능성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연구원장은 "미국이 중국 제품을 배제한 만큼 한국이 대체 불가한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옥스퍼드대 경제학과의 라이언 스위트는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해 "예상치 못한 것을 기대하라"고 경고하면서 전략적 유연성을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번 관세 폭탄은 한국 산업의 체질 개선을 재촉하는 '쓴 약'일 수 있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베이직 펀의 CEO 제이 포먼이 "포장재 축소, 배터리 사용 자제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위기는 창의적 해법을 낳는다. 결국 미국의 '해방의 날'이 한국 제조업의 '혁신의 날'로 전환될 때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세계 통상질서가 보호무역으로 급선회하는 지금, 관세 장벽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시장을 보는 안목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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