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오늘 아침 색조 화장품을 바른 여성이거나, 혹은 출근을 앞두고 기초 화장품을 사용한 남성 직장인이라면 이 회사 제품 사용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콜마(대표이사 최현규)가 바로 그 기업으로 자사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는 ODM(주문자상표제작·Original Design Manufacturer)이다 보니 소비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실제 이 회사 제품 사용자는 광범위하다.
한국콜마의 올해 매출액이 2조원 돌파가 유력해지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90년 창업해 2018년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5년만에 2조원대로 점프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TV CF 등을 적극 전개하면서 마케팅 전략에 변화가 있지 않느냐는 궁금증을 낳고 있다.
◆올해 '매출 2조' 유력… 연구개발·M&A로 5년만에 더블
한국콜마는 올해 3분기 매출액 5162억원, 영업이익 310억원을 기록했다(이하 K-IFRS 연결). 전년동기대비 각각 9.05%와 71.51% 증가했다. 이번 3분기 매출액은 분기 최고 실적이다.
올해 1~3분기 누적 매출액은 1조6038억원으로 지난해 전채 매출액 1조8657억원에 육박했다. 증권가에선 올해 한국콜마 연매출액이 2조1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지 5년 만에 매출 2조원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국내 대표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이 4조4950억원인 점에 비하면 한국콜마의 성장세는 눈에 띈다. 한국콜마의 최근 5년(2017~2022) 매출액 연평균증가율(CAGR)은 17.82%로 고성장 기업군에 속한다.
한국콜마의 이같은 실적 개선 배경에는 연구개발(R&D)과 M&A(인수합병)가 있다.
한국콜마는 창업 초기에는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개발자(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로 시작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최초로 ODM 사업에 나섰다.
OEM은 주문업체의 제품설계와 생산공정에 맞춰 제조업체가 생산해 주문업체 브랜드를 부착해 공급 및 판매하는 방식이다. 반면 ODM은 제조업체가 직접 설계 및 개발, 생산한 제품을 주문업체 브랜드로 공급해 판매한다. ODM은 제조업체가 직접 설계 및 개발 등을 맡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해야 가능한 사업이다. 당연히 제품의 납품가격도 OEM 상품에 비해 높다.
한국콜마는 이를 위해 창업 초기부터 직원의 30% 이상을 연구원으로 채용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또 연매출액의 5% 이상을 신소재와 신기술 연구에 투자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회사의 특허 건수로도 나타난다. 지난 9월 기준 특허 등록 및 출원은 총 256건에 달한다. 월 평균 28건의 지식재산권 출원 및 등록을 하는 셈이다. 한국콜마는 모든 연구원들이 특허·실용신안·디자인 등록과 출원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또 윤 회장의 기술중심 경영철학 정신을 담은 '석오기술상'을 제정해 혁신적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에게 수여하고 있다. 한국콜마의 고객사는 국내외 900여곳에 이른다.
◆CJ 헬스케어 인수·글로벌 상표권 확보
한국콜마는 M&A를 통한 '사이즈 키우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8년 CJ그룹의 제약 계열사인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인수한 것이다. 당시 업계에선 '새우(한국콜마)'가 '고래(CJ헬스케어)'를 잡는 이변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1조3000억원대의 높은 인수금액을 제시한 탓에 한국콜마가 결국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5년이 지난 현재 한국콜마의 CJ헬스케어 인수는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CJ헬스케어 인수를 바탕으로 화장품과 제약 분야의 투트랙 경영을 펼쳐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한국콜마의 2018년 매출액은 CJ헬스케어 인수 전인 2017년에 비해 65.3% 증가한 1조3579억원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4.3% 증가한 900억원이다.
CJ헬스케어 인수가 성공하자 한국콜마는 M&A에 한 차례 더 나섰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국내 화장품 용기 시장 점유율 1위 연우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2021년 기준 연우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871억원과 299억원(영업이익률 10.4%)으로 집계된다. 화장품 용기 시장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로 꼽힌다. 한국콜마는 용기 제조 부문을 내재화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한국콜마는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2007년 중국 베이징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으로도 눈을 돌렸다. 한국콜마는 지난 2016년 현지 화장품 ODM 회사인 프로세스 테크놀러지 앤드 패키징사(PTP)를 미 화장품 및 미용용품 소싱 전문기업 웜저와 공동 인수했다. 한국콜마는 현재 중국 2곳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에서 총 4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콜마가 북미시장 공략을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바로 상표권 문제다. 한국콜마는 기업 모태인 미국 콜마와의 상표권 문제 때문에 PTP 인수 후에도 사명을 변경하지 못한 채 예전 이름을 유지해야 했다. 캐나다 법인도 사명에 콜마를 넣지 않은 채 'CSR'로 사용해왔다. 한국콜마의 브랜드 인지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제는 지난해 한국콜마가 미국 콜마로부터 글로별 상표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를 통해 세계 주요 국가에서 ‘콜마(KOLMAR)’ 브랜드의 독점 사용권을 확보했다. 한국 화장품 기업이 글로벌 본사의 브랜드 상표권을 인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콜마는 글로벌 상표권 인수를 계기로 국내와 중국 중심인 시장을 북미와 아시아 등으로 다변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상현 한국콜마 부회장은 "K뷰티가 글로벌 화장품 시장을 리딩하는 주축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상징적인 일”이며 “한국 화장품 산업의 표준을 만들어 온 지난 32년을 바탕으로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최현규(63)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최 사장은 화장품 영업 뿐만 아니라 글로벌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2016년 한국콜마 중국총괄 사장으로 임명됐으며 이후 중국 영업총괄과 무석콜마 법인장 등을 지내면서 중국 시장 공략에 앞장섰다. 최현규 사장은 한가지를 시작하면 깊게 파고드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2세 윤상현 부회장 그룹 전 관계사 사업 방향 총괄...윤여원 사장도 건기식 사업 맡아
한국콜마는 1990년 5월 윤동한(76) 창업회장이 대웅제약 부사장을 그만두고 대웅제약 직원 6명과 힘을 합쳐 창업했다. 인류 역사에 대해 조예가 깊고 특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전문 지식은 독보적으로 알려졌다. 한국콜마의 한 임원은 "윤동한 회장님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 언급하면 입을 다문다. 숫자와 지명이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다"고 귀띔했다. 코로나 발발 전까지는 정기적으로 임직원들과 함깨 경남 통영 이순신 광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9년 8월 사임하고 현재 경영은 장남 윤상현(49) 한국콜마 부회장이 그룹 전 관계사 사업 방향을 총괄하고 있으며. 장녀 윤여원(48) 콜마비앤에이치 대표이사 사장도 건기식 사업을 맡는 등 경영 일선에 있다.
윤동한 회장은 2021년 11월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다시 복귀했지만 주요 계열사의 기존 이사회와 전문경영인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윤동한 회장 복귀는 윤 회장이 부재한 기간에 그룹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가 사퇴한 이듬해인 2020년 한국콜마 매출은 1조3221억원으로 전년(1조3789억원) 보다 뒷걸음질쳤다.
2012년 한국콜마를 기업분할해 한국콜마홀딩스를 설립했다. 윤상현 부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한국콜마홀딩스 지분 29.2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콜마그룹의 부회장으로서 그룹 전 관계사 사업 방향을 총괄하고 있다. 윤여원 사장의 한국콜마홀딩스 지분율은 6.96%다. 윤동한 부회장과 윤 사장의 지분은 아버지에게서 증여받은 것이다. 윤 회장의 한국콜마홀딩스 지분은 현재 5.03%다. 한국콜마홀딩스는 주력 계열사 한국콜마와 콜마비엔에이치 지분 27.14%와 44.4%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HK이노엔의 최대주주(43.01%)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