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이 청사진 단계를 넘어 착공 국면에 들어섰다. 정부는 지난 3일 전남 해남 솔라시도에서 2.4조원 규모 국가 AI 컴퓨팅센터의 첫 삽을 떴고, 나흘 앞선 지난달 29일에는 400여 개 기업·기관이 참여하는 'AIDC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켜 18.4기가와트(GW) 규모 구축 계획을 공식화했다. 삼성은 솔라시도에 17조원 규모 클러스터 조성을, LG전자와 SK엔무브 등은 액체 냉각 기술 개발을 각각 확대하며 민간도 발을 맞추고 있다.
착공한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완공 시 국가적 AI 컴퓨팅 허브로서 산·학·연에 대규모 연산 자원을 공급하게 된다. 그동안 고성능 AI 컴퓨팅 자원이 글로벌 빅테크와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에 집중돼 온 상황을 정부가 민관 합작 방식으로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착공식에서 "첨단 GPU 확보와 국산 AI 반도체 활성화를 병행 추진해 AI 풀스택 경쟁력 확보에 기여하고 아시아 AI 인프라 허브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이 청사진 단계를 넘어 착공 국면에 들어섰다. 정부는 지난 3일 전남 해남 솔라시도에서 2조4065억원 규모 국가 AI 컴퓨팅센터의 첫 삽을 떴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그러나 청사진의 규모가 곧 실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수요가 몰리는 수도권의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다. 올해 3월 누적 기준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계통영향평가의 최종 공급 승인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데이터센터를 채울 서버·스토리지 등 일부 핵심 IT 장비의 국산 장비 활용 추정치도 한 자릿수에 머문다. 착공이라는 출발선에서 던져진 질문은 두 가지다. 계통 접속과 전원 조달을 아우르는 '전력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 그리고 서버·반도체·냉각 등 핵심 인프라에서 국내 기업이 '기술의 벽'을 얼마나 넘어설 수 있느냐다.
◆ 2조4065억 해남 착공...국가 AI 인프라 '메가프로젝트' 시동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에 앞서 추진돼 온 국가 AI 인프라 핵심 사업이다. 2025년부터 준비돼 올해 3월 삼성SDS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5월 사업자로 확정됐고, 6월 발표된 AI 데이터센터 국가 전략 산업화 정책과 맞물리며 본격적인 건설 단계에 들어섰다. 정부가 민관 합작 방식으로 AI 컴퓨팅 기반 구축에 직접 나선 것으로, 도로가 없으면 자동차가 달릴 수 없듯 대규모 GPU 연산을 감당할 인프라 없이는 AI 모델도 서비스도 굴러가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센터는 부지 4.9만㎡에 연면적 1.7만㎡,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다. 전력은 초기 40MW로 시작해 40MW를 추가 증설, 총 80MW급 AI 전용 데이터센터로 완성된다. GPU는 2028년까지 1.5만장을 확보한 뒤 오는 2030년까지 5만 장으로 단계적으로 늘린다. 사업은 과기정통부와 금융위원회 국민성장펀드, 삼성SDS 컨소시엄이 민관 합작 특수목적법인(SPC) 한국에이아이컴퓨팅센터(KOACC)를 세워 추진하며, 완공 전인 내년부터 삼성SDS 데이터센터의 일부 자원을 먼저 개방해 산·학·연 수요에 대응한다.
해남이 낙점된 데는 이유가 있다. 솔라시도는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간척지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자원과 확장 가능한 부지를 갖춰,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입지로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삼성 측은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포함한 솔라시도 데이터센터 구축에 총 17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구상을 내놨고, 삼성SDS의 210M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이준희 삼성SDS 대표는 착공식에서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민관 협력의 상징 모델"이라며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센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착공과 발을 맞춰 민관 협력체도 가동됐다. 지난달 29일 출범한 AIDC 얼라이언스에는 네이버클라우드·삼성SDS·SK텔레콤·KT·카카오·LG유플러스·LS일렉트릭·퓨리오사AI 등 12개사가 의장단으로 참여한다. 초대 민간 공동의장을 맡은 정재헌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장(SK텔레콤 대표)은 "AI 시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연대의 시작"이라고 했다. 정부는 오는 2029년까지 8.4GW, 2035년까지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 수도권 전력 승인율 1.9%...'전력의 벽'이 만든 병목
다만 청사진의 규모와 실제 실행 사이에는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전력의 벽'이다. 데이터센터 수요는 수도권에 쏠려 있다. 한전이 집계한 지난 2월 말 기준 AIDC(AI 데이터센터)·AI 팩토리 관련 전기사용 신청 161건 가운데 수도권이 101건으로 62.7%, 계약전력 기준으로는 2669메가와트(MW) 중 2100MW로 78.7%가 서울·인천·경기에 몰렸다. 수도권에는 기업 고객과 통신망, 전문 운영 인력이 집중돼 있고, 특히 실시간 추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센터는 이용자와의 물리적 거리가 응답 지연시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전력만 있다면 지방이 유리해도 수요자가 수도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국내 주요 기업 AI 데이터센터 공개 용량 계획. [자료=각사 발표]
문제는 그 수도권 전력망의 수용 여력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CBRE코리아가 기후에너지환경부 자료를 인용한 분석을 보면, 지난 3월 누적 기준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계통영향평가 1차 기술검토 신청 522건 중 279건(53.4%)이 공급 불가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243건은 1차 검토에서 공급 가능 판정을 받았지만, 실제 본심사에 진입한 것은 24건, 최종 공급 승인을 받은 것은 10건에 그쳤다. 건수 기준 최종 승인율은 1.9%, 승인 용량도 신청량의 약 3%에 불과하다. 발전과 전력 소비의 지역 불균형도 크다. 전력을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이 갈리면서 장거리 송전망을 둘러싼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시계도 어긋난다. 데이터센터 건물 자체는 2~3년이면 올리지만, 이를 받쳐줄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새로 놓으려면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건물은 다 지어 놓고 전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조사기관 업타임 인스티튜트도 '2026년 데이터센터 전망'에서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와 발전·송전 설비 가동 시점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 문제를 올해 핵심 전망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에 한전과 산업부는 지난 2023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한시로 비수도권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데이터센터에 전기 시설부담금 50% 할인과 예비전력 요금 면제 혜택을 운영해 왔다. 특히 지난 6월 9일에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관련 인허가의 일괄처리 제도를 마련하고,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의 신축·확장·전환에는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 특례를 부여해 수도권에 쏠린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AIDC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는 정부가 검토 중이다.
그러나 분산이 구호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인센티브를 넘어 세제와 통신망 인프라까지 함께 묶는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숙제다. 정부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2040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과 최대전력 수요'를 각각 26.5TWh, 4.0GW로 전망했다. 이번 계획은 전체 전력 수요 전망에 처음으로 복수 시나리오 체계를 적용했으며, 지난 6월에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을 반영해 전체 수요 전망을 상향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발전원 확보와 송전망 확충, ESS 등 계통 보강을 함께 추진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 서버 국산 활용률 3.3%…2~3년 AI 혁신, 20년 인프라가 버틸까
'전력의 벽'을 넘어도 '기술의 벽'이 남는다. 데이터센터를 채우는 핵심 IT 장비 가운데 특히 서버·스토리지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과기정통부가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 자료를 인용한 지난 2024년 기준 국산 장비 활용 추정치는 서버 3.3%, 스토리지 1.82%에 그친다. 물론 AI 데이터센터에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나 글로벌 네트워크·스토리지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이어서 모든 장비를 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관건은 AI 반도체와 전력 효율, 냉각, 소프트웨어 스택 등 전략적 영역에서 국내 기업이 고부가가치 밸류체인의 몫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다.
국내 주요 기업 AI 데이터센터 및 AI 인프라 투자 계획. [자료=각사 발표]
AI 하드웨어의 진화는 이미 데이터센터의 설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랙 스케일 시스템 'GB300 NVL72'는 액체 냉각 방식으로 설계돼 풀 랙 기준 최대 142kW의 전력을 요구한다. 고밀도 AI 랙에서 기존 공랭식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이 늘면서 액체 냉각 채택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달 600kW급 냉각수 분배장치(CDU)로 국내 기업 최초 엔비디아 최종 품질 인증을 받았고, SK엔무브·미국 GRC와는 액침 냉각 기술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인수를 완료한 유럽 공조기업 플랙트그룹을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도 국내 기술 생태계 확충에 나섰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추진하는 K-클라우드 기술개발 사업은 지난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6년간 총 4031억원을 투입해 국산 AI 반도체 기반 데이터센터의 인프라·하드웨어와 컴퓨팅 소프트웨어, 특화 클라우드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30년 AI 데이터센터 국산화율을 2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이 20%는 앞서 언급한 서버 국산 장비 활용 추정치 3.3%와 산정 범위가 달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 기술의 속도와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수명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AI 모델과 GPU, 랙 시스템은 불과 2~3년 사이에도 세대가 바뀌고 전력밀도와 냉각 요구가 빠르게 높아지는 반면,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통상 20년 이상 운영을 전제로 하는 대규모 시설이다. 지금의 AI 시스템에 맞춰 지은 전력·냉각 설비가 몇 년 뒤 등장할 더 고밀도 장비까지 수용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기술 변화에 대응할 때마다 설비를 대규모로 개조해야 한다면 추가 비용이 커지고, 대응하지 못하면 고밀도 AI 장비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해 자산 활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 입지도 마찬가지다. 현재 확보 가능한 전력만 볼 것이 아니라 향후 계통 여력과 송전망, 통신 인프라, 냉각 방식에 따른 용수까지 장기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AI 데이터센터의 경쟁력은 지금 가장 많은 GPU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여러 세대의 AI 기술 변화를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해남에서 뜬 첫 삽은 분명한 출발 신호다. 그러나 삽을 뜨는 것과 오랫동안 경쟁력을 유지하는 AI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18.4GW라는 청사진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계통 접속과 전원 조달이라는 '전력의 벽', 핵심 장비와 기술 경쟁력이라는 '기술의 벽'을 넘어야 한다. 결국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가 판가름 나는 곳은 착공식장이 아니라, 수조원을 들여 구축한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변하는 AI 기술에 맞춰 얼마나 오래 경쟁력 있게 가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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