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는 총수 부재로 실적 부진과 재계 순위 하락을 겪었던 태광그룹이 올해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호진 전 회장이 14년 만에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경영 복귀 의지를 내비쳤고, 반도체·이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 발굴과 금융 계열사의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 M&A 귀재로 불리며 그룹을 재계 36위까지 끌어올렸던 이 전 회장의 귀환이 태광그룹의 재도약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광그룹 지배구조와 현황. 2024. 9. 단위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태광그룹, 매출 9조...투자 가속화로 돌파구 찾는다
태광그룹은 2024년 공정위 발표 공시대상기업집단 50위를 기록했다. 전년대비 2단계 상승했다. 그룹 매출액 9조1860억원, 순이익 4720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28.47%, 17.16% 감소했다. 계열사는 태광산업, 대한화섬, 티알엔, 티시스, 한국케이블텔레콤, 티캐스트,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흥국생명보험 등 20개로 전년 대비 1개(에이치케이금융파트너스) 늘었다.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태광산업은 태광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그룹 전체 매출액의 23.60%(2조1677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주력사업은 섬유, 섬유화학, 첨단소재이다. 특히 2024년 3분기 기준 석유화학제품 부문이 전체 매출의 84.5%를 차지하며 그룹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과거 재계 36위까지 올랐던 태광그룹은 실적 개선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주력 사업 고도화와 신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1450억원을 투자해 아라미드 생산능력을 연산 5000톤으로 확대하고,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 내 청화소다 생산공장을 두 배로 확대해 글로벌 정밀화학 시장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청화소다 생산공장 증설에는 내년까지 약 1500억원이 투입되며, 오는 2027년 1월부터 연산 13만2000톤 규모의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태광그룹 지난 10년 연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이미지= 더밸류뉴스]아울러 자산관리회사(AMC) 설립을 통한 리츠 사업 진출했다. 이를 위해 태광그룹은 지난달 KB스타리츠 투자운용 담당 원광석 KB자산운용 리츠본부장을 영입했다.
태광산업 주요품목 매출 비중. [자료= 태광산업 사업보고서]
◆태광산업에 이은 핵심 계열사 흥국화재, AI로 디지털 전환 본격화
금융 부문의 핵심 계열사인 흥국화재는 지난 2006년 태광그룹에 편입돼, 2009년 현재의 흥국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로 변경됐다. 업계 대비 장기보험의 비중이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설계사 조직의 정착률은 업계 평균대비 지속적으로 양호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흥국화재 최근 분기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이미지= 더밸류뉴스]2023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했다. 장기보장성보험 매출 비중을 90%로 유지하며 업계 평균(70%)을 크게 상회했고, 장기손해율도 2021년 103%에서 2023년 95%로 큰 폭의 개선을 이뤄냈다. 특히 '맘편한 자녀사랑보험'과 '내일이 든든한 암보험' 등 수익성 높은 보장성보험에 주력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디지털 혁신도 가속화하고 있다. 챗봇서비스 도입으로 고객 응대 시간을 30% 이상 단축했으며, KSQI 우수콜센터 인증과 웹접근성 인증을 획득해 디지털 고객 서비스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또한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 도입으로 보험금 지급 심사 등 핵심 업무의 자동화율을 7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금융 계열사들의 AI 활용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는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챗GPT 특강을 실시하고 있으며, 데이터 분석, 마케팅, 인사, 재무 등 주요 업무에 AI를 접목하기 위한 전사적 혁신을 추진 중이다. 특히 보험 심사와 언더라이팅 과정에 AI를 도입해 업무 정확도를 95%까지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신회계제도 대응도 차질없이 진행 중이다. 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에 앞서 자본건전성 강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완료했으며, 리스크관리 체계도 고도화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디지털 전환과 재무건전성 강화가 시너지를 내며 금융 부문이 그룹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호진 전 회장 복귀로 '잃어버린 10년' 만회하나...첨단소재·디지털 전환으로 승부수
이호진 전 회장이 지난해 5월 횡령·배임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14년 만에 회사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화된 경영 공백으로 인한 그룹의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특히 산업계가 1%대 국내총생산(GDP) 저성장 전망과 급락하는 원화 가치, 침체한 소비심리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복귀라 주목받고 있다.
태광그룹 오너 가계도와 지분현황. 2024. 9. 단위 %. 이 전 회장은 지난 2004년 취임 이후 M&A 전문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이블TV 티브로드와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그룹을 계열사 20개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2000년대 초반 한국도서보급(게임산업 경품용 상품권 사업)을 인수한 것은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2018년에는 티브로드를 직접 일궈 케이블TV 2위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사법리스크로 인한 경영 공백이 이어지며 그룹의 M&A는 중단됐고, 2024년에는 공시대상기업집단 50위까지 순위가 하락했다. 이에 태광그룹은 2032년까지 제조·금융·서비스 부문에 12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석유화학에 6조원, 섬유 부문에 4조원, 금융·미디어 부문에 2조원을 투자해 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반도체 및 2차전지 소재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아 첨단 소재 사업을 육성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 전 회장의 복귀가 그룹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태광그룹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다양한 산업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국내 기업에 부족한 첨단 소재 관련 새로운 신소재를 발굴하고 제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다. 또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ESG 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AI 활용 확산과 금융계열사들의 인슈어테크 강화 등 디지털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어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