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과 의지만 있다면 나이·연차·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
국내 최대 식품미디어 그룹 CJ를 이끄는 이재현 회장이 지난달 제3의 도약 선포식에서 이같이 언급하면서 CJ그룹의 주력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계열 '빅3'(CJ제일제당·프레시웨이·푸드빌) CEO 인사가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달 3일 이재현 회장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제3의 도약'을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C(문화)·P(플랫폼)·W(웰니스)·S(지속가능성)'를 4대 성장동력으로 제시하며 향후 3년간 10조 원을 투자해 신성장 동력을 찾겠다고 밝혔다. 2018년 미국 냉동식품업체 슈완스를 2조원에 인수했다가 재무 부담으로 정체기를 겪다가 이번에 다시 한번 혁신과 투자를 선언한 것이다.
이재현 회장은 '삼성가(家) 장손'이라는 부채 의식을 갖고 있고 CJ를 여기에 걸맞는 규모로 키워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CJ그룹은 지난해 전체 매출액 24조원으로 재계 13위를 기록했다. 재계 1위 삼성그룹(333조8310억원)과 차이가 크다.
당초 재계에서는 최근 CJ그룹 주요 계열사 CEO 인사가 진행됐던 만큼 이번 인사는 소폭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이재현 회장의 '제3의 도약'에서의 발언이 혁신과 도전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J그룹 인사는 이달 중순 단행될 것으로 일려져 있다.
◆CJ제일제당·푸드빌·프레시웨이, 올해 실적 양호
CJ그룹에서 '식품'은 그룹 출발점이자 여전히 핵심 사업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CJ그룹은 지난해 기준 계열사 77곳을 갖고 있고 매출액을 살펴보면 CJ제일제당(22조3525억원)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어 CJ대한통운(10조4151억원), CJ ENM(3조7897억원), CJ프레시웨이(3조원), CJ푸드빌(8900억원), CJ올리브네트웍스(4649억원) 순이다(이하 K-IFRS 연결기준). CJ그룹의 한 축을 식품(제일제당·푸드빌·프레시웨이)이 담당하고 있고, 나머지 한 축을 미디어·물류·라이프(대한통운·ENM·올리브네트웍스) 신사업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식품계열 '빅3'의 올해 실적은 모두 양호하다. CEO 3인의 재임 기간도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실적'과 더불어 CEO 평가의 양대 기준으로 꼽히는 '리스크 관리'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재현 회장의 지난달 발언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최은석 CJ제일제당 CEO, 1~3Q 실적↑... 차세대 '바이오'도↑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이사는 지난해 3월 CEO에 취임해 1년 9개월째 재임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올해 1~3분기(1~9월) 실적은 양호하다. 매출액 19조3414억원, 영업이익 1조2878억원으로 전년비 각각 6.89%, 21.15% 증가했다. 영업이익률도 전년 동기 5.87%에서 올해 6.66%로 0.79%p 증가했다. 지난 3분기엔 단일 분기론 처음으로 매출 4조원을 넘었다.
특히 식품부문의 영업이익률이 5.32%로 전년동기(5.07%) 대비 0.25%p 증가했다. 식품사업의 영업이익률이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계속 하락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CJ제일제당은 올해 건강 트렌드에 따라 닭가슴살 시장에 진출하고 ‘고메 프리미엄 냉동피자’ 라인업을 확대하는 등 HMR(가정간편식) 식품군을 강화했다.
CJ제일제당은 그룹 차세대 사업으로 꼽히는 바이오 부문의 실적도 개선했다. 올해 1~3분기 바이오 부문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 6조9373억원, 영업이익은 5806억원으로 전년비 각각 23.24%, 37.61% 증가했다. 지난해 친환경 플라스틱 재료인 ‘PHA’로 화이트 바이오 영역에서 성과를 보이고 올해 7월 마이크로바이옴 전문업체 천랩을 인수해 그린(식품)∙화이트(환경)∙레드(제약)’ 3대 바이오 사업의 청사진을 모두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은석 대표는 삼일회계법인, 삼경회계법인을 거쳐 2004년 CJ에 합류, CJ대한통운 경영지원실장 부사장, CJ 경영전략총괄 등을 역임했다. 일처리가 꼼꼼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췄다는 평이다. CJ제일제당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일은 어떤지 먼저 물어보시는 등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춘 덕장(德將)으로 불린다”고 귀띔했다. 이재현 회장 장남 이선호(31)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 부장 후견인으로 알려져 있다.
◆정성필 CJ프레시웨이 대표, 흑자전환·수익성↑
정성필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는 지난해 12월 취임해 재임 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CJ프레시웨이의 올해 1~3분기 실적도 양호하다. 매출액 1조6847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8782억원) 대비 약 10.30%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385억원으로 전년 동기(19억) 대비 1926%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260억원으로 전년비 흑자 전환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률은 2.28%로 전년동기(0.10%) 대비 대폭 개선됐다.
이러한 실적 개선은 지난해 실적이 코로나19로 부진했던 기저효과도 있지만 정성필 대표의 경영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CJ프레시웨이는 올해 '위드 코로나(with corona)' 흐름이 나타나자 키즈(kids)와 시니어(노인) 대상의 제조∙유통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식자재유통 부문은 3분기 누적 매출액 1조4105억원, 영업이익 303억원으로 전년비 매출액은 소폭 줄었으나 영업이익이 1277% 증가했다. 푸드서비스(단체급식)부문도 매출액 3356억원, 영업이익 34억원으로, 매출액은 전년비 약 3.03%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정성필 대표는 수익성 회복이 어려운 사업을 정리하기도 했다. 지난해 해외급식 사업에 이어 축산 유통사 ‘프레시원미트’를 정리했다. 프레시원미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738억원으로 전년(1101억원)대비 급감했고 당기순손실폭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60억원을 기록했다. 또, 중국 급식서비스를 담당하는 법인의 지분을 정리했고 베트남 사업도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부실 사업 리스크를 굳이 안고 가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정성필 대표는 2018년부터 약 2년간 CJ푸드빌 대표이사로 재임하며 재무구조를 개선했다는 평을 받는다. 정 대표는 삼성SDS에 입사 후 CJ그룹에 합류해 CJ시스템즈 전략기획실, CJ헬로비전 경영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김찬호 CJ푸드빌 CEO, ‘뚜레쥬르’ 실적↑...식품 '빅3' 최연소 CEO
김찬호 CJ푸드빌 대표는 지난해 12월 취임해 1년째 재임하고 있다. 식품계열 '빅3' CEO 가운데 최연소(50)이다.
CJ푸드빌은 비상장이어서 올해 1~3분기 실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의 CJ그룹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CJ푸드빌의 주력 사업인 프랜차이즈(뚜레쥬르)의 1~3분기 매출액은 2884억원으로 전년비 6.30% 증가했다. CJ푸드빌은 전체 매출액의 75% 가량이 뚜레쥬르에서 나온다. 나머지는 빕스(VIPS)를 포함한 외식 부문에서 나온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소규모 가정 모임이 늘어나면서 빵과 케이크의 매출이 증가했다. 뚜레쥬르 미국 법인도 올해까지 4년 연속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CJ푸드빌은 베이커리 사업과 외식 부문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는 어느정도 안정화에 성공한 가운데 ‘빕스’를 포함한 외식 부문까지 반등에 성공할지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김찬호 대표는 배달 전문 매장, 레스토랑 가정간편식(HMR) 등 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공유주방 형태의 빕스 배달 전문매장 ‘빕스 얌 딜리버리’는 지난해 론칭 이후 올해 26곳으로 확대됐다. 빕스 서울 반포역점과 대구 수성교점을 고품격 다이닝 서비스에 특화된 ‘빕스 프리미어(VIPS Premiere)’ 매장으로 리뉴얼했다. 현재 빕스 프리미어 매장은 총 7곳이다. 그렇지만 CJ푸드빌 점포 수는 2019년 2558개에서 지난해 말 1525개로 줄었고, 외식 매장 수 역시 현재 60여개 수준으로 지난해에 비해 30% 감소했다. 김찬호 대표는 1993년 CJ그룹에 입사해 CJ사업담당, 푸드빌 글로벌사업담당, 베이커리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번 인사에서 이재현 CJ 회장 장남 이선호 부장이 임원으로 승진할 것인가도 관심거리다. 이선호 부장은 2013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2017년 부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장은 올해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 담당으로 미국프로농구 ‘LA레이커스’의 파트너십 계약 체결을 이끄는 등 성과를 보여 임원 승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누나 이경후 CJ ENM 전략실장이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해 상대적으로 승진이 늦춰졌다는 점도 이런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아직까지 임원 인사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며 “지난해 인사가 12월 초∙중순에 진행됐던 것을 고려하면 그쯤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