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 도너츠 내부공장이 비위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제보가 공개되면서 SPC그룹(회장 허영인)이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통행세 거래와 부당 지원으로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받은 데 이어 이번 사태로 SPC그룹의 리스크 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SPC그룹은 2019년 12월 기준 계열사 23개, 자산총액 4조3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재계 60위권이다.
계열사 23곳을 매출액 기준으로 하면 파리크라상(1조7776억원), SPC삼립(1조원), 비알코리아(5600억원)의 3개 회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파리크라상은 SPC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이자 사업회사로 우리에게 친숙한 파리바게뜨, 쉐이크쉑, 리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SPC삼립은 SPC그룹 유일의 상장사이며 양산빵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상 공개→SPC 반박→제보자 기자회견·재반박
비알코리아(대표이사 도세훈)는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던킨 도너츠와 베스킨 라빈스를 양대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던킨 도너츠 위생논란은 지난달 29일 KBS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을 통해 제공받은 제보 영상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경기 안양의 던킨 도너츠 환기장치에 기름 때가 묻어있고, 환기장치 아래의 밀가루 반죽에 누런 물질이 묻은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반죽한 도넛을 기름에 튀기는 공정에 설치된 설비와 튀긴 도넛에 입히는 시럽 그릇 안쪽에도 까만 물질이 묻은 모습도 공개됐다.
이에 대해 현재 SPC측은 제보자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상 공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비알코리아는 보도자료를 내고 "제보 영상에 대한 조작 의심 정황이 발견됐다"며 "공장 내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한 결과 현장 직원 1인이 아무도 없는 라인에서 소형 카메라를 사용해 몰래 촬영하는 모습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또, “해당 직원은 설비 위의 기름을 일부러 떨어뜨리려고 시도하고, 고무주걱으로 긁어내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며 해당 직원에 대한 수사를 경찰의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도세호 비알코리아 대표이사도 자신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현재 보도 내용 확인 결과 제보 영상에 대한 조작 의심 정황이 발견됐다"며 "해당 CCTV 파일을 경찰에 넘겨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30일 오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위생관리로 안전한 제품을 생산, 공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과문을 던킨 도너츠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에서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식약처 "SPC공장, 식품 안전 부적합"...'1등 식품기업' 브랜드 타격
그렇지만 SPC측의 이같은 반박 입장에 시민단체가 고발에 나서는 등 사태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CCTV 영상에 나오는 제보자가 1일 SPC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진행된 기자회견에 등장해 SPC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제보자는 "SPC그룹이 1등 식품기업임에도 시민들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공익제보를 했다"며 "2019년 (안양 공장에) 새 장비가 도입되기 전에도 (불량한) 위생 환경에 대해 (회사측에)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지금까지 시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같은 날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김강립. 이하 식약처)는 "문제가 된 던킨도너츠 안양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공장이 해썹(HACCP.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9~30일 식약처는 문제가 된 던킨 도너츠 안양 공장을 불시 점검해 해썹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었다.
공익제보자가 신변의 불리함을 무릅쓰고 기자회견에 나서고 식약처가 던킨 도너츠 공장에 대해 해썹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서 사태는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SPC측은 식약처의 결정에 대해서는 시정 조치를 약속하면서도 제보자 영상 조작 입장은 굽히지 않고 있다.
제보자의 공개 기자회견과 식약처의 SPC공장 해썹 부적합 판정 이후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편이다. 던킨 도너츠는 남녀노소 넓은 인지도를 확보한데다 아이들 간식으로도 즐겨 사용되는 만큼 위생 문제가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 단체 사이트를 살펴보면 “식약처 위생기준 위반 사항이 나왔으니 원래 위생에는 원래 문제가 있던 것 아닌가”, "제보자가 신상 공개 리스크를 무릅쓰고 기자회견을 한 것을 보면 순수성이 느껴진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사태 발생 초기만해도 “SPC그룹이 민주노총 화물연대와 갈등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작 이슈가 터지다니 안타깝다”는 반응과는 대조적이다.
현재 던킨도너츠 제조시설에 대한 위생불량 문제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로 넘어간 상태이다. 권익위는 3일 A회사에 대한 위생불량 문제를 조사해달라는 신고를 비실명으로 대리 접수했다고 밝혔다. 또, 제보자는 회사측로부터 출근 정지 등의 불이익 조치를 받자 권익위에 보호조치를 신청했다.
◆"리스크 관리 점검해야"...공정위, "오너 의사결정 구조"
SPC그룹이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반박하는 입장을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공정위는 "SPC 계열회사들이 SPC삼립을 장기간 부당 지원한 행위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하고 총수, 경영진, 법인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21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사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SPC그룹은 공정위를 상대로 조치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같은 SPC 대응은 오너 의사결정이 그룹 전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공정위는 SPC측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SPC는 실질적으로 일부 계열회사를 제외하고는 총수일가가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보유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며 "허영인 회장은 그룹 주요 회의체인 주간 경영 회의, 주요 계열사(파리크라상, 삼립, 비알코리아) 경영 회의 등에 참석하여 계열사의 주요 사항을 보고받고 의사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또, "허영인 회장의 결정 사항은 조상호, 황재복 등 소수 인원이 주요 계열사의 임원을 겸직하면서 일관되게 집행됐다"고 덧붙였다.
SPC그룹이 리스크 관리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같은 배경을 갖고 있다.
식음료 기업에게 이슈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기업 운명을 좌우한다. 미스터 피자로 잘 알려진 MP그룹은 오너의 경비원 폭행 혐의로 상장 폐지가 되고 오너가 교체됐다. 호식이 두 마리 치킨도 오너 갑질이 이슈가 되면서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두 기업 모두 이슈가 제기되자 변명, 반박 등의 대응으로 여론을 악화시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교촌에프앤비(이하 교촌)은 2018년 말 권원강 회장 6촌 임원(상무)의 갑질이 공개되자 사실 인정과 공개 사과를 통해 사태를 수습한 케이스다. 당시 권 모 상무가 매장 직원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사실이 공개되고, 이로 인해 퇴사 조치됐다가 재입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졌다. 그러자 당시 권원강 회장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개선을 약속했다. 이를 계기로 교촌은 사태를 수습했고, 기업공개(IPO)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SPC 사태로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곳은 가맹점주들이다. 벌써부터 SPC 식품위생에 의문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고, 때마침 물류 지연으로 가맹점주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파리바게뜨의 점포주 A씨는 “아침 일찍 도착해야 할 식재료들이 오후 늦게 도착하면서 팔지 못하고 폐기하는 제품들이 늘어났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물류 지연으로 경영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던킨 사태 이후 SPC그룹의 유일한 상장사인 SPC삼립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이 회사의 주가는 제보 영상이 공개된 29일 이후 하락세다. 직장인 김모씨(24)는 “던킨 도너츠가 SPC삼립의 브랜드인 줄 알고 있었다”며 “삼립의 인지도가 높아 SPC하면 삼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PC가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분기점에 서 있다"며 "소비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영속 기업(Going concern)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