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어피니티 컨소시엄과의 풋옵션 분쟁에서 승소했다.
6일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는 신창재 회장이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제시한 40만9000원에 교보생명 풋옵션(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을 매수하거나,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정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어피니티 에쿼티파트너스, IMM PE(IMM 프라이빗 에쿼티), 베어링 PE, 싱가포르 투자청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교보생명은 보도자료에서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교보생명 풋옵션 행사가격(40만9000원)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가산한 금액이라고 주장했지만 중재판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신 회장은 이와 별개로 딜로이트안진∙어피티니 컨소시엄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형사재판에서도 유리한 입장에서 서게 됐다. ICC 중재재판은 단심제로 법원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신 회장 입장에서 이제 남은 것은 딜로이트안진∙어피티니 컴소시엄과의 형사재판이다.
업계에서는 ICC의 이번 판정이 교보생명의 적정 가치를 감안하면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교보생명 풋옵션 행사가격을 40만9000원으로 산정한 것은 어떤 평가법으로 계산해봐도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이것이 ICC가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교보생명 적정 주가, 24만원→40만원으로 껑충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교보생명은 삼성생명, 한화생명과 더불어 국내 생명보험사 '빅3'로 꼽히며 당시 기업공개(IPO)를 추진해왔다. 교보생명은 생명보험 '빅3' 가운데 유일한 비상장사이다.
이 과정에서 2012년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F1(재무적 투자자) 자격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주식 24%(주당 24만5000원)를 매입했다.
이와 함께 2015년 9월 말까지 교보생명의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개인에게 이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걸었다. 이후 IPO가 이뤄지지 않자 2018년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또 다른 F1인 어펄마 캐피털은 신창재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했다.
문제는 이때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어펄마 캐피털이 각각 안진회계법인과 삼덕회계법인에 교보생명의 기업가치평가를 의뢰했는데, 이들 두 회계법인이 교보생명의 적정 주가를 40만9000원으로 산정하면서 발생했다. 이 금액은 신 회장이 주장하는 20만원의 두 배에 해당한다.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어펄마 캐피털은 교보생명 주식을 24만5000원에 매입했다가 신창재 회장에게 40만9000원에 되팔아 두 배 가까운 차익을 남기는 셈이 된다. 반대로 신 회장 입장에서는 24만5000원에 매입할 수 있는 주식을 두 배에 가까운 40만9000원에 매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신창재 회장은 교보생명의 오너이자 CEO로 자신의 회사의 기업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에 교보생명은 풋옵션 가격이 1조원 넘게 부풀려졌다며 고발했다.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양철한 부장판사)에서 검찰은 "투자자들이 가치 평가방법, 평가인자, 결과값까지 선택하고 결정해 딜로이트안진은 단순 계산업무만 수행했음에도 마치 딜로이트안진이 독립적 지위에서 가치평가를 수행한 것처럼 허위 보고했다"며 "이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등을 보면 딜로이트안진은 투자자인 어피니티의 지시에 따라 가치평가를 수차례 수정하면서 투자자에게 유리한 가격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딜로이트안진측은 "공인회계사가 전문적 판단 하에 합리적으로 투자자 의견을 수용한 것이 허위 보고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자본시장법 적용하면 교보생명 36만원, 딜로이트안진은 15% 높게 평가
교보생명의 적정 기업가치(firm value)와 적정 주가는 얼마일까.
문제는 교보생명이 비상장사라는 점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기업의 가치평가는 어렵지 않다. 시가총액(maket capitalization)을 발행주식수(shares outstanding)로 나누면 주가(stock price)가 나온다. 예를 들어 교보생명과 동종업종에 있는 삼성생명의 경우 6일 기준 시가총액은 14조9400억원이고 발행주식수는 2억주이므로 주가는 7만4700원이다(14조9400억원÷2억주=7만4700원)
교보생명은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이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없지만 대안이 있다.
우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나와있는 비상장 기업의 가치평가법을 적용해보자. 여기에 나오는 가치평가법을 사용하면 풋옵션 행사 당시 교보생명의 적정주가는 36만원 가량이다.
비상장기업은 순자산가치와 수익가치에 근거해 기업가치를 추정한다. 순자산차기란 쉽게 말해 자본총계를 의미하고, 순손익가치는 평가기준일 이전 1년전부터 3년전까지의 순이익을 각각 50%, 33%, 16%로 가중평균한다.
원칙적으로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를 각각 3과 2의 비율로 가중평균해 평가하고, 이를 발행주식수로 나누면 주가가 나온다. 비상장기업을 가치 평가할 때 순손익가치가 낮아 비상장주식이 과소평가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순손익가치가 순자산가치의 80% 이상이 되도록 평가하고 있다.
이 평가법을 적용하면 F1이 풋옵션을 행사한 2017년 교보생명의 적정기업가치는 7조3767억원이고, 주가는 35만9841원이다. 딜로이트안진은 풋옵션 행사가격을 적정주가보다 13.91% 높은 40만9912원으로 산정했다.
◆PER, PBR 배수법으로는 23만, 14만원, 딜로이트안진은 1.7~2.8배 높게 평가
또 다른 평가법인 PER(주가수익비율) 배수법을 적용해보자.
PER은 IPO 예정 기업의 가치평가법으로 흔히 사용되며, PER에 동종 업종의 평균배수를 곱해 적정 기업가치와 주가를 계산한다.
교보생명의 2017년 실적을 살펴보면 영업수익(매출액) 15조3530억원, 영업이익 9579억원, 당기순이익 6740억원이었다. 자본총계는 9조8530억원, 발행주식수 2050만주였다. 삼성생명, 한화생명이 PER의 7~8배를 적용받고 있으므로 이를 교보생명에 적용하면 교보생명의 기업가치는 4조7180억원~5조3920억원이고, 적정 주가는 23만원~26만원이 나온다.
또, PER을 적용할 경우 풋옵션 행사일인 2018년 10월 23일과 가장 가까운 결산일인 2018년 6월 30일 기준 교보생명의 적정주가는 23만180원으로 딜로이트안진이 제시한 풋옵션 행사가격(40만9000원)은 이보다 1.77배 높다
이번에는 금융사의 기업가치평가법에 흔히 사용되는 PBR(주가순자산배수) 배수법을 적용해보자. 동종업종에 속해있는 삼성생명, 한화생명은 PBR의 0.3배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교보생명의 적정 기업가치는 2조9559억원이고 적정 주가는 14만4190원이다. 딜로이트안진이 제시한 풋옵션 행사가격(40만9000원)은 이보다 2.83배 높다.
결국 어떤 가치평가법을 적용하더라도 교보생명 풋옵션 행사가격 40만9000원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내 사립대의 한 회계학 교수는 "풋옵션 행사일 당시 재무제표가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결산일을 기준으로 풋옵션 행사가격을 책정한다"라며 "풋옵션 가치평가를 할 때 필요한 모든 자료를 이용하고 합리적인 가정에 기초해 객관적으로 평가했는 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