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조선 전기의 문학·사상·예술을 한 몸에 품은 인물이다. 단종에 대한 절의의 상징으로, 또 <금오신화>를 통해 한문소설의 가능성을 연 선구자로, 동시에 유람과 방랑 속에서 시대의 균열을 기록한 자유로운 지성으로 기억된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던 그의 삶만큼이나, 김시습의 글은 늘 동시대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방대한 증보 작업을 거친 <신편신역 김시습 전집> 전 6권. [사진=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
◆ ‘전집’의 의미를 다시 묻다, 신편·신역이라는 선언
부여문화원과 (사)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가 공동 발간한 <신편신역 김시습 전집>(전 6권)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하려는 시도다. ‘전집’이 흔히 기존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을 뜻한다면, 이번 전집은 그 단계를 넘어 텍스트의 토대를 새로 다진 작업에 가깝다. 제목에 담긴 ‘신편(新編)’은 원문을 다시 교감해 오류를 바로잡고 구성 체계를 재정립했다는 선언이며, ‘신역(新譯)’은 오늘의 독자를 염두에 둔 새 번역이라는 약속이다.
특히 불교 관련 시문과 저술은 <한국불교전서>를 바탕으로 원문을 대조·교감해 신뢰도를 높였고, 그 성과를 번역에 충실히 반영했다. 여기에 기존 전집에서 빠져 있던 자료들까지 보완해 김시습 저작의 외연을 확장했다. 1493년 무량사에서 간행된 <법화경> 발문, 불갑사 소장 <수능엄경> 발문, 일본 내각문고에서 확인된 <임천가화> 등이 이번 전집이 ‘새 기준판’임을 입증하는 대표적 성과다.
◆ 읽히는 전집을 위한 편집, 그리고 부여에서 완성된 문화유산
<신편신역 김시습 전집>은 정확성에 머물지 않고 ‘읽히는 전집’을 지향한다. 번역문 곳곳에 덧붙인 역자 해설은 고전 문장과 오늘의 독자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김시습의 문장이 기대는 사상적 전거와 맥락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며, 전집이 연구자만의 참고서가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열려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전집은 시·문·별집·속집·부록을 한 질로 엮어 김시습의 문학 세계와 사유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속집의 경우 기존 체제를 존중하면서도 수록 시문을 재검토하고 증보해, ‘정본화’와 ‘찾아 읽기’라는 전집의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이 방대한 작업의 중심에는 2003년 <김시습 평전>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있다. 신편·신역·주해를 도맡아 전집의 학문적 완성도와 신뢰도를 담보했다.
이번 전집의 또 다른 의미는 발간의 장소와 과정에 있다. 김시습의 마지막 거처인 부여, 무량사와 가까운 자리에서 이 전집이 완성됐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부여군의 지원, 부여문화원의 제도적 추진, (사)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의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불교계와 강릉김씨 종인들의 참여가 맞물려 한 인물의 언어를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복원해냈다.
김시습을 읽는 일은 과거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질문을 더 정확히 만드는 일이다. <신편신역 김시습 전집>은 그 질문을 위해 가장 단단한 바닥을 제공하는 기준판이다. 자유롭게 사유하고 경계를 넘나들었던 한 사상가의 언어가, 이 전집을 통해 다시 오늘의 독자 앞에 놓였다.
심경호 신편신역·주해/부여문화원·(사)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010 8991 8076) 펴냄/ 6권 5000쪽/ 비매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