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나는 괜찮아, 너 가고 싶은 데로 가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식사할 식당을 찾다가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에 놀랐다. 나는 먹고 싶은 메뉴가 늘 확고한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으러 가자고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비단 식당을 고르는 문제뿐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든, 뭘 하든 친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지나치게 나의 의견만을 밀어붙인 건 아닌지, 친구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고 있었다.
내 뜻대로 해서 친구의 안색이 변하진 않는지 살피는 것보단, 친구에게 맞춰주는 것이 마음이 편안했다. 친구뿐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대할 때 항상 그 사람에게 맞춰 그 사람이 편하게 느끼는 방식으로 대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게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센스 있다’, ‘배려심이 깊다’,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칭찬이 남의 입맛에 맞추려고 고군분투한 나에겐 보상으로 내려지곤 했다. 이런 나의 ‘사려 깊은 배려’를 받은 친구 역시 마음이 편할 거로 생각했는데 웬걸,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보다. 친구는 나에게 ‘아무거나 다 좋아’ 금지령을 내렸다. 내 의견을 내라니, 나는 그냥 네게 맞춰주는 게 편한데….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도대체 뭘 먹고 싶은 걸까?
자꾸만 나보다 타인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고,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의심하게 된다면 잃어버린 ‘참자기’를 찾아야 할 때라고, 책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은 말한다. ‘참자기’는 말 그대로 진짜 자기, 즉 자기 존재의 핵심을 뜻한다면, ‘거짓자기’는 이와 대비되게 사회에 기대 때문에 만들어낸 다른 자기를 뜻한다. 이때 문제는 ‘거짓자기’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마치 옷을 TPO에 맞춰 입듯이,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맥락에 맞는 ‘거짓자기’를 입는 것은 관계가 잘 굴러가게 돕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버거운 존재가 되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서 계속해서 거짓자기에 몰두하는 것이 문제다. 모든 잣대를 타인에 두어서 타인의 욕구만 읽을 줄 알고 나의 욕구는 없는 껍데기만 남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껍데기와 알맹이 모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민폐를 끼친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의 무게를 상대에게 싣는 행위다. 어딘가 부족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나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 내가 그다지 자립적 인간이 못 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일, 상대가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을 허용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부족한 모습대로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_ ‘성격좋다는 것에 가려진 말들’ 중에서
심리학자 이지안은 ‘민폐 끼칠’ 용기를 내기를 권한다. 한자로 사람을 뜻하는 ‘人’ 자를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상대를 해치는 과한 요청이 아닌 이상,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내 부족한 점을 내비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삶의 원리다. 상대에게 폐를 끼칠 것이 두려워서 내 의견조차도 표현할 수 없다면 나를 지킬 수 없다. 내 의견과 욕구를 묵살해서 삶이 허물어지는 와중에 듣는 ‘착하다’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그러니 필요할 땐 내 의견을 내고 부탁도 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껍데기와 알맹이 모두 잘 지킬 뿐 아니라, 관계를 잘 유지하는 방법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선택을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선택을 향한 여정 자체가 나다운 삶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나의 필요를 알아보고 나의 가치를 발견해 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내가 성취·인기·가족·성장·친밀한 관계·혼자만의 공간 등 다양한 영역 중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더 분명해진다. 결국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지고 내가 원하는 삶에 더 가깝게 한 걸음 내딛게 된다.” _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중에서
이 책을 쓴 심리학자 이지안은 남들을 먼저 생각하느라 자신은 늘 뒷전이라 힘들었던 자기 마음 속 그림자를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각자가 가진 그늘진 자리를 어루만진다. 먼저 용기를 내어 자신을 돌아본 저자처럼,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제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고 챙겨줄 때가 되었다. '착하고 무던한 사람'이라는 달콤한 함정에 빠져 잊고 있던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 나서 보자. 그곳에 있는 부족한 나를 직시하고 안아줄 때 비로소 우리는 껍데기와 알맹이 모두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다.
오늘 저녁 약속을 앞두고 저녁 식사로 뭘 먹고 싶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거나' 대신, 내가 정말로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는 데 성공했다. 친구의 답장을 기다리며 혹시라도 싫어하진 않을지 전전긍긍했건만 친구는 너무나 기꺼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다. 일단 당신의 솔직한 속내를 담백하게 얘기해 보자. 당신은 다가올 약속에서 무엇을 먹고 싶은가? 혹은 어디를 가고 싶은가? 이번만큼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난 다 좋아"라고 말하지 말고 당신의 솔직한 마음을 밝힐 수 있기를, 그리하여 온전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