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회장 신동빈)이 실적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경영' 체제를 선택했다. 신동빈 회장은 경영 혁신, 신사업 발굴, 글로벌 사업 확대를 골자로 하는 비상 경영에 나섰다. 바이오 CDMO(위탁개발생산·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전기차 배터리 소재와 같은 신성장 동력 발굴과 스타트업 투자를 통한 혁신을 추구하는 한편 식품 계열사들의 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오너 3세' 신유열 전무의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 선임으로 3세 경영 승계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1Q 영업익 693억 전년동기比 11.7%↓... 비상 경영 나서
롯데지주가 비상경영 체제를 본격화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지주의 1분기 영업이익은 693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784억원보다 100억원 감소했다(이하 K-IFRS). 당기순손익 감소폭은 이보다 커서 1분기 순손실 186억원을 기록했다. 롯데그룹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화학·유통 부문이 최근 몇 년간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롯데케미칼은 고유가 등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지난 2년 동안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으며, 이에 따라 비상경영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1분기 영업손실액은 280억원가량으로 국내 면세점 '빅4' 중 가장 컸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행태 변화로 시내면세점이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했으며, 중국의 한한령 해제 후에도 중국 단체 여행객 회복이 미미한 상황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은 롯데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롯데칠성음료는 이러한 그룹 전체의 실적 부진 속에서도 신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필리핀펩시(PCPPI)'를 종속자회사로 편입한 후 글로벌 부문 매출액이 크게 늘어 올해 상반기 6963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필리핀펩시의 영업이익률은 낮은 편이어서, 상반기 영업이익은 44억원에 그쳤다. 5000억원이 넘는 매출액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은 0.83%를 보였다. 내수 시장에서도 주류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긴 장마, 고환율, 사업경비 부담 등으로 인해 영업이익이 줄었다.
2분기는 매출액 4조1000억원, 영업이익 1717억원으로 전분기대비 각각 5.8%, 8.2% 증가했다. 이는 롯데 식품 계열사의 호조 지속과 롯데바이오로직스의 흑자전환 덕분이다. 이러한 기조는 3분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본격적인 성수기가 오면서 음료 가격 인상이 이뤄지는 만큼 외형성장 가능성이 높다. 롯데칠성음료는 필리핀펩시의 매출 확대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생산, 영업·물류, 관리 3개 부문으로 나누어 경영 효율화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롯데GRS·칠성음료·웰푸드 '3형제', 글로벌 시장서 활로 찾는다
롯데그룹의 식품 계열군은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수를 걸고 있다. K-푸드 열풍을 타고 롯데 식음료를 글로벌 시장에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롯데GRS(대표이사 차우철)는 내년 상반기 롯데리아 미국 1호점 오픈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지난 2월 캘리포니아주에 롯데리아 미국 법인을 출범시켰다. 입점지 선정, 인테리어 콘셉트 결정, 인력 채용, 메뉴 구성을 진행하면서 매장 오픈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대표이사 신동빈 박윤기)는 필리핀, 파키스탄, 미얀마 등 현지 자회사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연 매출 1조원 규모의 필리핀펩시를 종속자회사로 편입한 후 큰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 필리핀펩시 매출은 전년대비 12% 증가한 5271억원, 영업이익은 355.7% 성장한 44억원을 달성했다. 파키스탄과 미얀마 법인의 상반기 매출도 각각 전년대비 20.8%, 12% 증가했다. 롯데칠성은 북미, 유럽뿐만 아니라 남미, 인도, 중동 등으로의 수출 확대를 위해 현지 소비자 니즈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대표이사 이창엽 이영구)는 해외 7개국에서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이며, 특히 인도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올해 2분기 인도 법인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1.2% 성장한 958억원을 기록했으며, 이는 해외 법인 전체 매출의 43%를 차지한다. 롯데웰푸드는 인도 법인의 연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 AI·바이오 CDMO·전기차 배터리 신사업 발굴 나서
신동빈 회장은 과감한 혁신과 미래 준비를 통한 지속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 열린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 사장단 회의에서 신 회장은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면서 지속 성장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의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CEO의 무한책임 경영이다. "CEO들은 회사 경영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인 자세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둘째, AI 기반 혁신이다. 'AI 전환'을 화두로 던지며, AI를 본원적 경쟁력 강화의 핵심 도구로 삼을 것을 강조했다. 셋째, 신성장동력 발굴이다. 바이오 CDMO, 전기차 배터리 소재, 충전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사업 확대를 주문했다.
이러한 전략은 롯데그룹의 최근 실적 부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재계 순위가 13년 만에 6위로 하락했으며, 주력 사업인 화학·유통 부문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신 회장은 스타트업 투자를 통한 새로운 사업 기회 발굴에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신 회장의 납세담보 주식 해제로 주식 수가 감소(332만5354주)한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주요계약체결 주식 수 비율이 줄어서 경영권 안정화 움직임이 보인다며 장기적인 그룹 운영 전략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6월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전무의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 선임으로 3세 경영 승계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신 전무는 롯데파이낸셜 대표로 금융 시장을 잘 알고 있고 롯데홀딩스 경영전략실을 담당한 경력이 있어 회사 경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회장은 신유열 전무의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해당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회장이 제안한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이에 신동빈 체제가 더 공고해지고 있다는 평이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