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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케터 김정빈의 신입 해결책] ⑫'잠자'...우리가 잃어버린 더듬이에 관하여

  • 기사등록 2024-04-02 08: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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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직장인들이 꼭 알아야 할 '회사 생활 잘 하는 가이드북'을 소개하는 '막케터 김정빈의 '신입 해결책'을 연재합니다. 김정빈 문화평론가 겸 출판 마케터가 서점가에 나온 책을 직접 읽고 MZ세대가 놓치기 쉬운 직장 생활 성공 팁을 밑줄 긋고 정리합니다. 김정빈 평론가는 MZ세대와 호흡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김정빈 문화 평론가·출판 마케터] “언니, 고작 이딴 그림을 그릴 거라면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게 어때? 말끔하게 정장입고 회사에 가는 삶 말이야. 회식도 하고, 일 끝나면 쇼핑 가고, 사람들 만나고, 돈도 차곡차곡 모아서 멀쩡한 남자 만나 결혼도 하고… 그렇게 한번 살아 보는 게 어때?”

 

여기 바퀴벌레의 형상을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가족들을 피해 방 안에 틀어박혀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온갖 것들을 그리고, 칠하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하지만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은 그녀가 남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흉측하고 괴상한 모습으로 집안을 스스스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쳐 가족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을 지경이다.

 

우리 딸이, 우리 언니가 제발 남들처럼 ‘평범’하면 좋을 텐데. 그저 ‘보통’의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인데. 이게 다 널 위해서야. 머리에 달린 그 더듬이만 어떻게 한다면 너도 우리와 같아질 수 있어.

 

가족들은 그녀가 깊이 잠들었을 때 커다란 가위로 더듬이를 잘라버린다. 다음날 그녀는 왜인지 모를 슬픔을 느끼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가 남들처럼 전철을 타고 회사로 출근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동생이 말했던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회사의 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막케터 김정빈의 신입 해결책] ⑫\ 잠자\ ...우리가 잃어버린 더듬이에 관하여'잠자'. 경 지음, 고래뱃속. [이미지=교보문고]

 

얼마 전 내게 “행복은 뭐라고 생각해?”라고 묻는 이가 있었다. 행복이 뭐긴, 그저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장 다니면서 돈 벌고...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순 없어도 부족함은 없게 사는 거? 그러다 좋은 사람 만나 평범한 가족이 되는 거. 그게 행복이겠지.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디선가 보통의 삶을 사는 게 곧 행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처음 꿈꾸었던 미래의 나는 이미 내 안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나대지 말라는 소릴 들을까 봐 내 의견도 당당히 피력하지 못했고 특별함이, 특출남이 부담스러워졌다. 내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가족들의 말에 묵묵히 독서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한 적도 있다. 꿈을 이룰 자신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오직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잠자'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꿈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가슴속 깊은 곳에 켜켜이 먼지 쌓인 열정을,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후회를 들여다보게 한다. 사회가 정한 생애 주기의 룰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짐과 동시에 나와 같은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책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비로소 모두가 원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었습니다”의 결말을 맺지 않길 바라게 됐다.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안심시키며 자신을 1위로 두지 못한 채 소중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은 책이다.


[막케터 김정빈의 신입 해결책] ⑫\ 잠자\ ...우리가 잃어버린 더듬이에 관하여김정빈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


kmjngb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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