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과감한 의사결정에 주저해 미래 대비에 부진했습니다. 앞으로는 △문화(Culture) △플랫폼(Platform) △건강(Wellness)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 4대 성장엔진으로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일류 기업으로 도약해야 합니다.”
2021년 11월 3일, CJ그룹 사내 방송을 통해 이재현 회장의 결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화, 플랫폼, 건강, 지속가능성의 '4대 성장엔진'을 키우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2023 중기 비전'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현장의 임직원들 사이에는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그간의 시행착오에 대한 반성과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비전 선언 실현을 위해 오는 2023년까지 10조원 이상의 투자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CJ그룹은 처음으로 분기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식품, 바이오, 물류, 미디어의 4대 사업부문 모두 뚜렷한 실적 개선세를 보인 덕분이다. M&A(인수합병)를 비롯한 사업 다각화와 글로벌 진출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CJ제일제당, 본업 ‘식품’ 바탕으로 CJ바이오사이언스 출범
제일 적극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인 곳은 CJ그룹 성장 모태인 CJ제일제당이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브랜드를 필두로 한 문화(Culture)와 바이오 부문 확대 등 건강(Wellness) 부문에서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이 회장의 중기 비전 발표 직후 네덜란드 생명공학 기업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의 지분 76%를 약 2600억원에 인수했다. 세포∙유전자 치료제 위탁개발생산(CGT CDMO)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초에는 지난해 인수한 바이오기업 ‘천랩’을 ‘CJ바이오사이언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출범식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올해 2분기 바이오사업 부문은 매출액 1조3197억원, 영업익 2223억원을 기록해 전년비 각각 43.8%, 14.6% 증가했다. 최근에는 성장해가는 남미 시장 수요에 맞춰, 아미노산 공장을 증설하며 고부가가치 아미노산을 호환 생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J제일제당의 식품 브랜드 비비고는 미국에 이어 유럽에도 진출하며 글로벌 점유율을 확대 중이다. 미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험을 살려 ‘식품 불모지’로 불리는 유럽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일제당은 7월 독일에서 ‘유럽 중장기 성장전략 회의’를 열고 만두, 가공밥 등을 앞세워 유럽식품사업 매출액을 2027년까지 5000억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유럽은 국가별 식문화와 유통 환경이 다르고, 가공식품 기술력이 뛰어나 공략이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높은 소득 수준과 타 문화권 수용도가 높은 영국을 중심으로 기회는 열려 있다는 평이다. CJ제일제당은 인지도가 높은 비비고 만두 등을 앞세워 시장의 대형화를 꾀한 후 즉석밥, 닭고기 등을 통해 시장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CJ ENM, 미 콘텐츠 제작사 ‘엔데버 콘텐트’ 인수…현지 콘텐츠 공급↑
문화플랫폼 영역을 담당하는 CJ ENM은 올해 초 미국 프리미엄 콘텐츠 제작사 ‘엔데버 콘텐트’를 인수하고 사명을 ‘피프스시즌’으로 변경했다. 피프스시즌이 글로벌 파트너십 및 콘텐츠 자금 조달 및 제작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만큼, 미국 현지에서 자사 콘텐츠를 제작∙유통한다는 계획이다. CJ ENM의 지적재산권(IP)을 현지에서 선보인다면 글로벌 사업을 빠르게 가속화할 수 있다.
이러한 글로벌 역량 강화와 콘텐츠 공급에 따라 올해 아카데미상, 토니상에 이어 에미상까지 석권하며 ‘K-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흥행으로 한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콘텐츠 강화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CJ ENM의 SM엔터테이먼트 인수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SM엔터의 인수 이슈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말이 돌았으나,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CJ그룹이 문화 사업을 강조한 만큼 CJ ENM의 SM엔터 인수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물류 사업을 맡고 있는 CJ대한통운의 자회사인 CJ센추리는 말레이시아 물류기업 ‘CJKX’의 지분을 인수하며 아시아 물류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있고, CJ CGV는 코로나19 그늘 아래서 벗어나 집객에 성공하며 업계최초 ‘구독 서비스’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고 있다.
선제적 투자 등으로 CJ의 단기 차입금 부담은 5100억원으로 전년비 약 59.37% 증가했다. CJ는 신성장 투자를 위해 투썸플레이스, CJ제일제당 부동산 등을 처분해 비주류 사업을 정리하고 본업 경쟁력을 강화한 바 있다. CJ측은 “CJ제일제당의 슈완스 인수 당시도 재무적 부담 우려가 있었지만 약 3년이 지난 지금 재무 건정성을 회복했다”며 “단기 차입금 등은 그룹차원에서 성장이나 투자할 때 충분히 고려해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환율∙고물가’ 이중고에도 '분기 매출액 10조' 성과
CJ그룹은 올 2분기에 분기 사상 첫 매출액 10조원대를 기록했다. CJ의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10조3094억원, 영업익 6880억원으로 전년비 각각 23.70%, 21.20% 성장했다. CJ는 종속기업으로 CJ제일제당, CJ ENM, CJ대한통운 등 주요 계열사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연결 기준으로 그룹실적으로 봐도 무방하다.
CJ그룹이 영위하고 있는 주요 사업부문을 살펴보면, 올 상반기 기준 물류&신유통 부문(비중 37.90%)은 전년비 12.40% 증가한 7조400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식품 및 식품서비스 사업(32.10%) 역시 국내 시장지배력 강화와 해외진출 확대로 전년비 13.90% 성장했다. 생명공학 부문은 전년비 29% 성장하며(매출액 3조7000억원) 가장 높은 성장치를 보였다.
CJ대한통운은 노조 파업 이슈를 극복하고 이커머스와 글로벌 사업 호조에 힘 입어 분기 최대 실적을 갱신해 의미가 크다. CJ대한통운은 올해 3월까지 파업으로 시름했으나, 파업 철회 후 실무 협의를 통해 지난 7월 부속합의서 타결에 성공했다.
◆’3세’ 이선호, 식물성 식품사업 총괄... 2025년까지 매출 2000억 목표
3세 승계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이재현 회장 장남인 이선호 경영 리더는 CJ제일제당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식물성 식품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7월 서울 중구 CJ인재원에서 ‘식물성 식품 R&D 톡(Talk)’을 개최해 식물성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2025년까지 매출 2000억원을 목표로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꾀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를 위해 인천2공장 자체설비를 구축하고 추가 증설도 고려하고 있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2013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해 지난해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담당 부장에 이어 연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식품전략기획 임원으로 승진했다.
CJ 관계자는 “2023 비전 선언 이후 올해 고물가∙고환율의 도전에도 실적이 개선됐다"며 "남은 기간에도 4대 성장엔진을 중심으로 선제적 투자와 시장 확대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