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기 명예교수
[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전 한국중재학회 회장] 지난 2020년 한국 주식시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2020년 코스피는 연중 최저점 대비 최고점이 97.1% 상승했다. 거의 두 배가 오른 것이다. 여러 가지 이변들이 속출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현저한 현상 중의 하나는 성장주들이 시장을 주도하였고, 가치주들은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눈앞에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들의 주식이 큰 돈을 벌어주자, 새로 주식투자에 눈을 뜬 사람들이 성장주식에 몰려들고, 이전에 가치투자를 해온 사람들도 1년도 채 못되어 가치투자 철학을 포기하고 성장주 투자로 돌아서는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아울러 한때 유행했던 가치투자 교육이나 가치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도 동시에 시들해졌다.
심지어는 가치투자의 몰락이라는 성급한 말마저 시중에 나돌게 되었다. 급기야 2020년이 저물 무렵에 한국 가치투자의 1세대로서 ‘한국의 워렌 버핏’으로 불렸던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사장이 물러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근에는 지난 2020년 주식투자에서 자신감을 얻은 일부 전문가들이 가치투자로는 돈 벌기가 어렵다는 취지의 광고까지 내고 있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가치투자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주식시장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일이다. 이런 일은 머지않아 지나가고 시장에서 가치투자의 철학을 지킨 투자자들은 오래 살아 남는다.
가치투자의 황제라고 불렸던 존 네프(John Neff)도 그의 투자 역정에서, 2020년도의 한국 가치투자자들과 같은 역경에 처해서 고생한 적이 있다. 존 네프는 그의 책 『JOHN NEFF ON INVESTING』에서 성장주가 주도하던 시절의 고통스러운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존 네프가 운영하는 뱅가드 윈저 펀드(Vanguard's Windsor Fund)는 1972년 일부 대형 성장주를 향한 시장의 기호를 무시한 채 기존의 방식대로 가치투자의 길을 고집하였다.
시장이 머지않아 윈저가 보유했던 저평가 종목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는 존 네프의 소망과는 달리, 성장주에 현혹된 시장은 윈저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펀더멘털 우량기업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성장주들이 연일 상종가를 달리면서 윈저의 실망감은 더해만 갔다.
마침내 1973년 윈저는 25%의 손실을 입고, 존 네프는 주주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설명해야 했다.
“윈저 포트폴리오 매니저로서 저는 저PER 종목이 머지않아 시장에서 상당한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저 역시 제 가정에서 보유한 자산의 대부분을 윈저 펀드에 쏟아 부었고 1964년 중반 이후부터 윈저 펀드와 함께 즐겁고 또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모든 주주 여러분이 저와 같은 확신과 기대를 가지고 윈저 펀드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낼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1974년에 접어들면서 성장주 열풍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거의 5년 동안을 성장주와 맞서면서 저PER투자를 고집해온 존 네프는 1975년이 되면서 원칙중심 투자의 열매를 수확하기 시작하여 1976년이 시작되었을 때 윈저는 90여 개의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 1억 달러 규모 이상의 경쟁 펀드들보다 평균 수익률이 54.5% 높았고, 실적 2위의 펀드와는 5%, S&P 500과는 17.4%의 격차를 보였다.
1976년에 이르러 윈저의 탁월한 실적은 성장주가 주도하던 시절의 손해를 충분히 보상해 주었다. 5년 단위 실적으로 계산해보면 경쟁 펀드들보다 뒤쳐지지 않았고, 10년 단위 실적으로 보면 윈저에 필적할 만한 펀드는 아예 없었다.
이러한 시장 역사의 한 부분을 회고할 때, 필자는 한때 잘나가던 성장주에 편승하여 돈을 번 경쟁 펀드들이 결국에는 수익률 경쟁에서 밀려 난 것은 아마도 투자원칙의 일관성 결여나 성장주가 돈을 벌어준다는 믿음이 가치투자가 시장에서 돈을 벌어준다는 믿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치투자는 날로 발전하는 금융의 시대에 시장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무기인 것이다.
존 네프는 가치투자의 황제로 불리고 있지만, 그의 가치투자 공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자산가치에 중점을 두는 가치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기업의 성장가치에 투자하는 것도 가치투자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다만 가치의 계산 방법이 전통적인 가치투자와 다를 뿐인 것으로 생각한다. 가치투자는 다의적인 개념이며, 그 개념과 포섭 범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지만, 가치투자는 주식시장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자산을 불려주었고, 여전히 수많은 성공자를 탄생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가치투자 철학을 포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치투자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가치투자로 돌아오고, 다소 시들해진 듯한 가치투자 교육이 다시 활성화되어야 대한민국이 금융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급등하는 것을 보고 주식투자에 관심이 생긴 개인투자자의 수가 갑자기 많이 늘어났다고 금융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mentorfor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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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은 버핏연구소 윤진기 명예교수 칼럼 ‘경제와 숫자이야기’ 2021년 10월 24일자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원문에 각주 설명을 추가로 더 보충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원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