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을 포함한 고위급 임원들에 대한 전격적인 물갈이 인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극심한 실적 부진에 대한 문책성 인사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사장을 황 부회장 후임으로 전격 발탁한 것도 철저한 '성과주의'에 기초한 경영을 하겠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지주(004990)는 이날 오후 4시 임시 이사회를 열어 황 부회장 사임을 포함한 지주 및 계열사 임원들에 대한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이날 오전 롯데하이마트(071840)는 이사회를 열고 이 사장을 대표이사에서 제외했다. 이 대표가 이날 오후 4시쯤 롯데지주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황각규 부회장 후임으로 이 사장을 내정한 셈이다.
이 대표가 등기상으론 롯데지주 공동 대표이사에 오르지만 당분간 사장직은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시기상 승진 인사 시즌은 아니다보니 일단 등기 상으로만 3인 공동 대표 체제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간 신 부회장 아래 황 부회장과 송용덕 부회장 투톱 체제였다면 앞으로 3인 공동 대표 체제는 유지하되 '신 회장- 송 부회장 - 이 대표'로 직급 수직화 체제를 이룬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이후 지주 슬림화에 대한 얘기가 꾸준히 있었고 이번에 단행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1960년생으로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상품 소싱과 영업 등을 두루 거친 백화점맨이다. 2007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장, 경영지원부문장을 맡았다.
이후 2012년 롯데월드 대표로 자리를 옮긴지 2년 만에 롯데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2015년 대표이사로 선임돼 하이마트 성장세를 이끈 '유통전문가'다.
한편, 신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부터 '시장을 리드하는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한다'며 변화와 혁신을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지난 5월 일본 출장에서 2달 만에 돌아와 국내 경영 현장에 복귀했을 때에도 "이번 위기만 잘 넘기자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변화에 대한 민첩한 대응, 고정관념을 깨는 사고의 전환, 빠른 실행력 등을 주문했다.
지난달 비대면으로 하반기 롯데 사장단 회의(VCM)를 진행하면서도 "내년 말까지 코로나19 정국이 계속될 것"이라며 기존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혁신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2분기 실적은 처참했다.
롯데쇼핑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1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8.5% 급감하고, 1천99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간신히 적자는 면했지만 창사 이래 처음 받아보는 최악의 성적표였다.
롯데케미칼도 전방산업의 수요 약세에 대산공장 사고까지 겹치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0% 이상 급감했다.
다른 계열사들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냈다.
하반기 경영 환경이 뚜렷하게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신 회장은 인적 쇄신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유통 부문을 중심으로 22개 계열사의 대표를 교체하는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지만, 이보다 더 큰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룹 2인자인 황 부회장을 전격 교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가 한국과 일본 롯데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은 신 회장의 장악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3월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으로 선임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벌여온 경영권 분쟁도 사실상 마무리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 롯데 경영을 모두 책임지게 되면서 그룹 지배구조 개선은 물론 깜짝 인사와 조직 개편을 통해 인적 쇄신에도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힘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