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9일 새벽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부회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 실장(69)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64)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이로써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2018년 2월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난 이 부회장은 2년 4개월 만에 다시 수감될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새벽 검찰이 신청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다"면서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취지임"을 강조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1년 7개월에 걸친 검찰 수사는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당장 수사 과정을 비판하는 여론의 역풍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 측은 “민사판결에서 이미 합병이 적법하다고 판결했고,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라는 검찰 주장은 상식 밖”이라며 반박했다. 이에 법원은 이 부회장 등 임원들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삼성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로써 삼성 측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총수 부재로 인한 경영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부회장 측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돼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 등에서 불법 행위가 일절 없었다는 점 등을 성실히 규명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대해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고 9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2시께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 3명의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된 직후 이같은 입장을 냈다. 다만 검찰은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11일 검찰시민위원회의를 열어 이 부회장 관련 사건을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넘길지를 결정한다. 부의가 결정되면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외부 전문가가 먼저 결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