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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전 한국중재학회 회장] 퀀트투자의 아버지로 알려진 미국의 수학자인 에드워드 소프(Edward O. Thorp)는 30여 년간의 투자 인생 동안 연평균 수익률이 대략 20%이며, 2012년 기준으로 개인자산은 한화로 9,000억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 준 힘의 원천은 이론이다. 


소프는 갓 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UCLA에 강사로 있던 스물 여섯 즈음에 그저 방안에 앉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카지노에서 널리 행해지는 블랙잭 (Blackjack) 카드게임을 수학적 방법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런 생각은 대체로 영감이나 직관에 의하여 다가온다. 그러나 영감이나 직관이 있어도 엉덩이의 힘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론이 나오기 쉽지 않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연구에는 엄청난 호기심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블랙잭에서 이기는 전략이 궁금했던 그는 MIT로 간 뒤에도 낮에는 본업인 수학을 연구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텅 빈 건물들을 지나 계산기가 있는 방으로 가서 저녁 8시부터 동이 트기 직전까지 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1950년대 말의 먼로 계산기는 전자계산기이기는 하지만 컴퓨터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케임브리지의 습한 여름 밤을 웃통을 벗은 채로 경우의 수를 계산하였다. 호기심은 마취제와 같다. 엄청난 인내를 만들어 낸다. 


그는 블랙잭에서 이기는 전략을 찾아 무수한 결정사항을 압축해서 그림으로 만들어 손바닥만 한 종이에 옮길 야무진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로 게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게는 6000조 개에 달했다.


문제가 복잡할 때 수학자들에게는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방법론이 있다. 필자가 부러워하는 수학적 생각법이다. 그는 수학자답게 문제를 단순화하려고 노력해서, 마침내 플레이어의 우위를 결정하는 것은 남은 카드의 수량이 아니라 남은 카드의 비중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적중하였고, 행운도 따라왔다. 


손으로 밤마다 계산기를 두들기다가 자신도 대학에 있는 IBM 704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 책을 보고 컴퓨터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혼자서 익혀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계산을 하였다. 손으로 하면 천년이 걸릴 일을 컴퓨터는 10분만에 해주었다. 어떻게 이런 행운이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운 좋게도 1959년부터 61년까지 IBM 704 컴퓨터가 있는 MIT에서 근무했다. 강렬한 소망은 행운을 끌어온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여, 그는 결국 다양한 이기는 전략을 설계할 수 있었고, 또 시작할 때 꿈꾸었던 손바닥 크기의 요약 카드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이미 나온 카드를 외워 이길 확률을 높이는 카드카운팅(card counting)이라는 이전에 없던 획기적인, 블랙잭에서 이기는 방법이 담긴 이론이 완성된 것이다. 


그가 땀 흘려 완성한 이론으로 계속 카지노를 이기자 그는 마침내 카지노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결국 그는 카지노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관심을 주식 시장으로 돌렸다. 


 

에드워드 O. 소프 저/김인정 역/신진오 감수, 《나는 시장을 어떻게 이겼나》 (2019). [사진=예스24 캡쳐]

그의 책 《나는 어떻게 시장을 이겼나》에 신주인수권과 전환사채 헤지 이론을 개발할 때의 이야기가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이때 개발한 이론을 토대로 하여 파트너 제이 리건(Jay Regan)과 함께 1969년에 Convertible Hedge Associates(CHA)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1974년에 PNP(Princeton Newport Partners) 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세계 최초의 시장 중립 헤지펀드라고 알려졌다. 


그의 펀드는 20년 이상 수수료 후 20%의 수익률을 올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것이 이론의 힘이다. 이론이 검증되어 완성될 때 엄청난 힘을 가진다. 소프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치열한 검증을 거친 이론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 이론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내 이론이 현실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


재미있게도 소프는 첫 블랙잭 게임이나 첫 주식 투자에서 모두 실패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선행 연구들을 공부하고 이론 개발에 착수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에 실패하지만 실패 후의 행동은 사람마다 다르다. 소프는 첫 블랙잭에서 손해를 본 후에 바로 UCLA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그 후 첫 투자에 실패했을 때는 서점으로 직행하여 그 서점에서 살다시피 했다. 모두 선행 지식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그의 행동은 다른 실패자와 확연히 다르다. 그는 투자에 성공한 2003년에 수학자답게 깐깐한 조건을 붙여서 큰돈을 UC어바인 수학과에 기부하였다. 


주식 투자의 세계만큼 이론이 무시되는 곳도 드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이론은 중요하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투자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시장을 거꾸로 해석하는 간단한 모형을 만들어 과거 한국 상장기업 데이터를 가지고 재미삼아 검증을 해보고 있는데 기특하게도 제법 잘 들어맞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주식 투자를 성공적으로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투자이론을 선택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시장에서 이론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시장을 멀리서 관찰해보면 재미있는 일로 가득 차 있다.


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전 한국중재학회 회장). [사진=더밸류뉴스]

저작권자 Ⓒ 윤진기.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출처를 표시하여 내용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원문은 버핏연구소 윤진기 명예교수 칼럼 ‘경제와 숫자이야기’ 2023년 04월 09일자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원문에는 각주가 부기되어 있으며, 각주에서 인용자료의 출처와 추가적인 보충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원문 참조]


mentorfor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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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13 08: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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