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
자기계발서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 언제던가. 이렇게 하면 돈이 많아질 수 있고, 저렇게 하면 사회적 위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거창하고 섬세하게 늘어놓는 수많은 책 가운데 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 책은 없었다. 아마도 문제는 나에게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자기계발서 명저들이 이야기하는 조언을 귀담아들을 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혹은 그들과 같은 결의 인생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실제 나의 삶과 사회의 기대치 사이에 괴리가 생길수록 나는 조급해졌고,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계발서를 샀다. 사고 나면 그런 자신감이 솟았다. ‘이 책만 읽으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성공할 수 있겠지.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위신도 쌓을 수 있겠지.’ 책이 배송되는 단 하루간 나는 책을 읽지도, 어떤 노력을 하지도 않아 놓고서는 마치 이미 성공을 일부 이룬 사람인 양 평온해졌다. 그러고는 반도 채 읽지 않은 책이 책장 구석에 쌓여 묵어가는 동안 전과 다름없는 나의 삶을 돌아보며 이전보다 더 큰 부채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나는 자기계발서에 한해 ‘장서가’이자 ‘활자격리소’이자 ‘출판계의 빛과 소금’, ‘소장학파’, ‘아가리 독서러’, ‘집책광공’ 그리고 ‘책곰팡이’가 되었다. (언급된 별칭들은 전부 X의 @samtalkigo라는 유저가 이용자들의 창작 내지는 추천을 받아 정리한 ‘책 사 놓고 안 읽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 해소되지 못한 부채감이 읽히지 못한 자기계발서와 함께 책곰팡이처럼 쌓여 가던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아, 책곰팡이로 사는 게 나뿐만은 아니구나.’
오늘의 고민 해결책은 특히 자기계발서를 좀처럼 읽지 못했던, 그러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읽고 따라야 한다는 부채감에 시달린 적 있는 나와 같은 책곰팡이들이 읽어 보길 권한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나와 엇비슷한 경험을 한, 그래, 당신을 말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세간의 자기계발서를 도무지 ‘잘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아등바등하려다 결국 책곰팡이까지 되어 버렸지 않나. 눈앞의 불안을 겨우 잠깐 잠재워 주는, 더 큰 자책과 더 큰 불안을 가져올 뿐인 이야기에서 이제 그만 눈 돌릴 때도 되었다.
이 책이 우리가 소화해내지 못한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은 ‘성공을 위해 무언가를 배제하거나 희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삶에는 종착지가 없다. 치열하게 노력했던 과거(과정)는 성공한 현재(결과)와 이어지지 않는다. 성공을 우리 삶의 맨 마지막에 골라인처럼 세워 놓고 저기만 보고 달려가라며 채찍질하지도, 성공 외의 삶의 요소들을 무시하거나 희생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저 골인 지점을 통과하기만 하면 고생 끝이라며, 그다음 이야기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는 영원한 해피 엔딩일 것처럼 포장하지도 않는다. 저자가 서술하는 인생살이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치열했던 과거(과정)는 무언가를 성취했고, 실패하기도 한, 여전히 치열한 현재(과정)로 이어진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여태껏 타인이 규정해 왔던 가치를 이제는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나가라고 부드럽게 조언한다.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다소 도발적인 제목은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돈을 많이 버는 성공이란 삶의 여러 형태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며, 유일한 정답지 같은 것이 아니고, 그것을 쟁취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명작가로, 평론가로, 변호사로 살며 치열하게 청년 시절을 보낸 끝에 남들이 입을 모아 ‘성공했노라’ 평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오른 사람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나처럼 성공하라’는 손쉬운 말 대신, 이제껏 숱한 자기계발서들이 쉬이 건넨 적 없었던 무겁고 어려운 경고를 던진다.
“우리는 나의 시간을 써서 돈이 아닌 무엇을 쌓아왔는지, 또 쌓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중략) 돈에만 목을 매게 되면 말 그대로 돈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삶이 되는 셈이고, 돈마저 없어지면 삶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142쪽)
“경험은 확실히 우리의 자산이 된다. (중략) 사라질 수 없는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짜 힘이 된다.”(144쪽)
당신이 손에 쥐고 끙끙거렸던 자기계발서가 수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다 한들, 당신의 삶은 바꾸어 주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삶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좁혀 지는 한 장짜리 그림 따위가 아니다. 무작정 성공을 좇는 것만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라고 믿었던 이라면, 이제 그만 맞지 않은 옷을 입어 보려 끙끙대지 말고 우리의 삶의 굴곡에 알맞은 조언을 찾아 듣자. 정지우의 목소리를 슬쩍 들어 보는 것만으로 지금껏 나를 가두고 있었던 비좁은 울타리가 골라인 너머로 확장되는 것이 느껴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