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더 많은 혜택과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공하는 모든 정보를 무제한으로 읽어 보세요."(앞표지)
택배 상자를 ‘언박싱’하고 에어캡을 걷어내자 이런 문구가 보인다. 그다음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정보는 폭탄 모양의 프레임에 새겨진 노란색 글자, "90% Limited". 그렇게 찰나를 서성이며 원치 않던 정보를 두어 번 삼키고 나서야 비로소 제목이 보인다. '다크패턴의 비밀'. 표지의 텍스트가 이 같은 순서로 읽히도록 의도한 기획자와 표지 디자이너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찰나의 스트레스적 경험에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집약되어 있다.
무언가를 구독할 때보다 구독을 해지할 때 더 절차가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초 결제 금액과 추가금을 모두 더한 최종 금액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이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구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는 제대로 읽거나 듣기 어렵고, 우리는 어디서든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아닌 눈에 띄게 화려하고 커다란 글씨로 쓰인 쓸데없는 정보를 더 먼저 읽고,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스스로 찾아 나선 정보나 유익한 공부 자료, 잠깐의 휴식, 여가, 요리 레시피, 약속 장소, 회사 일을 위해 검색해 본 구글 화면, 거의 모든 ‘외부 자극’이 입을 모아 이렇게 속삭인다. ‘그걸 사!’ 물론 소시지나 핸드크림 따위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상품뿐 아니라 무형의 가치나 시간 따위도 모두 ‘그것’에 포함된다.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는 틀렸다. 현실의 ‘빅 브라더’는 당신의 지갑에만 관심이 있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조종하려 드는 거대한 손은 총칼 대신 부드럽고 말캉한 입술로 이런 말을 속삭인다. '그걸 사. 그래, 그것도 사면 좋고.' 책 표지의 그것처럼 노골적으로 광고임이 드러나는 경우는 일정 부분 걸러낼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마저도 100%는 어렵다.) 대부분은 우리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우리를 조종하려 든다.
저자는 시사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유명한 청문회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021년 3월, 구글과 X, 메타의 각 CEO가 한자리에 모여 한 하원의원의 질문을 받는다.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넘기도록 의도적으로 속이고 조종하는 디자인 기법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반대하겠습니까?”(12쪽) 세 사람 중 누구도 대놓고 어리숙하게 패악을 부리거나 ‘적극 반대하겠다’ 말하지 않지만, 진정성 있게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나이스한 대답에 속 알맹이는 없다. “필요 이상으로 내줄 생각은 없는 것이다.”(13쪽)
띠지에 쓰인 문구 “인간 심리의 빈틈을 파고드는 나쁜 넛지”에서 넛지(nudge)란 본래 ‘(팔꿈치 등으로) 슬쩍 찌르다’의 뜻을 가진 영어 단어로,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다. 저자는 우리를 기만하고 속이는 나쁜 넛지의 목적과 유형, 나쁜 넛지에 쉽게 당하고 마는 우리의 약점에 대해서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저자가 분석한 대상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절대 모를 수 없는, 조금의 위화감도 가져 본 적 없을 친숙한 일상의 것들이다.
“요즘 대부분의 소셜미디어 제품에 적용된 무한 스크롤이 대표적이다. 무한 스크롤은 페이지 넘김 버튼으로 사용자를 방해하거나 살펴본 콘텐츠의 페이지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었다.”(107쪽)
거의 모든 온라인 화면, 이 글이 실린 뉴스 칼럼 지면에도 적용되어 있는 ‘스크롤’ 기능이 대표적인 예시다. '스크롤'은 우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갖 걱정거리를 잊은 채 깊이 몰두하여 그 행동을 하는 상태”에 빠트리는 데 일조한다.
이러한 속임수, 기만적 패턴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곤란한 상황에 빠트린다. 금전이나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며, 생각을 조종하거나 기본적인 권리를 야금야금 침해하며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고갈시킨다. 더 최악인 것은 이러한 ‘다크 넛지’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거나 더 약자인 이들일수록 잘 먹혀든다는 것이다. 지난 두 차례의 ‘오늘 고민 해결책’ 연재에서 나는 당신에게 ‘문제를 인지하고, 일단 시작하라’는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오늘 같은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다크패턴'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사회적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당장 시행하는 것 말이다.
이 글의 제목에서 ‘무언가 소비하고 싶어질 때는’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주체적 소비를 하고 싶은데 다크패턴에 노출되어서 고민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소비가 24시간 동안 숨 쉬는 것처럼 시시때때로 일어날뿐더러, 그 모든 순간에 복합적인 형태로 관여하는 다크패턴을 일일이 인지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자 고민 해결책의 제목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야금야금 스트레스가 쌓일 때’로 수정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어제보다 약간 더 불행하고, 약간 더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다면, 우리 일상에 몇 그램의 버거움을 더하는 숨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글을 다시 올려 보라. 딱 여섯 문단만 올라가면 이런 문장이 나올 테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유명한 청문회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는 잘못된 정보다. ‘(당신만 빼고) 대한민국 교양인들이 당연하게 알고 있을 아주 유명한 미국 청문회 사건’ 같은 것은 없다. 청문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 소식을 실시간으로 또는 뉴스 기사로 접한 사람들이 당연히 존재하지만, ‘(당신만 빼고)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유명한 청문회’는 아니다. 혹시라도 내 글을 읽으며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면, 심지어 이토록 유명한 사건을 나 혼자만 모르는 것 같아 ‘뜨끔’ 했다면 당신은 다크패턴에 당한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이 글의 전반에 걸쳐 아주 부드러운 어투로 ‘대부분의 교양인들이 정보를 접하기는 하는데, 바쁜 직장인을 위해 그 모든 양질의 정보를 단 세 줄로 요약해 주는 뉴스레터 사이트가 있다’고 속삭인다면, 그러한 식의 ‘뜨끔’하는 순간과 부드러운 권유가 다양한 공간에서, 며칠에 걸쳐 계속 반복된다면, 인터넷 창의 ‘닫기’ 버튼과 똑 닮아 무심코 누른 버튼이 뉴스레터 사이트로 연결된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하지 않고 참을 수 있었을까? 10명 중 10명이 모두 그럴 수 있었을까?
이 세상에는, 고작 이 정도의 어린애 장난 같은 다크패턴보다 교묘하고 우아한 속임수가 넘쳐난다. 나도, 당신도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저자가 말했듯 이는 개인이 인식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또 의심하라. 적어도 하루 24시간 중 단 몇 시간이라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무언가 소비하고 싶어질 땐, 다크패턴을 떠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