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와, 어떻게 이렇게 뾰족하게 일하는 거지?’ 나로서는 생각도 못 한 기발한 이벤트를 진행해서, 홍보와 재미를 모두 잡는 SNS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랑받는 다른 출판사를 보며 오늘도 감탄 반, 한숨 반 내쉬며 생각했다. 남다른 보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는 대단한 남들의 모습에 배가 아파 잠깐 눈을 돌려 SNS 세계로 피신하려 했더니 웬걸.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라더니 SNS에서도 남다른 감각으로 일하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전시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성사시키고, 구현해내는, 그런 모습을 보며 질투했다.
성실성뿐인 재미없는 사람으로 평생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도 좀 달라지고 싶었다. 그 사람들처럼 감각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내고, 쉬는 날에도 끊임없이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감각이 생기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무작정 노력만 했다. 하지만 성실성을 무기로 시도한 어중간한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도대체 일터에서는 어떻게 감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으로 답을 찾던 내게 감각적인 잡지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매거진 'B'를 창간한 조수용 대표의 책 <일의 감각>은 물어왔다. 감각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냐고 말이다.
<일의 감각>은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경력을 쌓으며 자신의 브랜드까지 성공시킨 조수용 대표가 자신의 경력을 돌이켜 보며 정리한 일하는 감각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일하는 감각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를 구별해내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일을 하다 보면 제한된 시간과 자원 안에서 어떤 것에 공력을 들여야 할지를 선택하는 순간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 정말 집중해야 할 곳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바로 ‘감각’이다. 내가 하는 일이 더 나아질 방향을 잡아주는 일종의 나침반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감각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어떤 일이 성공하려면 나만의 취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선호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만나는 지점, 서로 밀고 당기는 압력이 느껴지는 그 미세한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_ <일의 감각> 중에서
보통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혹은 남들이 좋아하는 감각적인 경험을 많이 쌓아야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일의 감각>에서는 감각을 ‘내 취향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높이 쌓아 올린 결과’라고 말한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사람들이 좋아하겠거니 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때에야 ‘일의 감각’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감각을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의 일하는 마음가짐부터 돌아보라고 얘기한다. 내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 일’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나의 취향과 타인의 취향 두루 살피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빵 한 조각을 봐도, 도시의 빌딩을 봐도 왜 그런지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 그게 바로 감각의 핵심입니다. _ <일의 감각> 중에서
제아무리 열심히 취향을 골고루 ‘디깅’하더라도 감각의 날이 무딘 것만 같다고? 당신이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멋진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옷과 화장품을 똑같이 따라 입고 바른다고 해서 내가 그와 똑같아질 수 없듯이, 단순히 좋아 보이는 것들의 겉모습만 핥아서는 감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내가 감각적이라고 느낀 것들을 왜 감각적으로 느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신이 브랜드를 만들며 골몰했던 고민을 담백하게 들려주며 감각을 익히는 방법의 정수를 공유한다. 그 서비스와 물건(또는 공간)의 본질은 무엇일지, 그 본질은 어떻게 살려낸 것인지를 깊이 해찰해볼 것, 그걸 알아냈을 때야 타인의 감각이 나의 감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브랜드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또 그게 바로 일의 본질입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나의 신념을 퍼뜨리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더 일해보려고 합니다. _ <일의 감각> 중에서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못살게 굴며 힘들게 일의 감각을 익히려고 드는 걸까? 내가 하는 업무 하나하나가 나의 포트폴리오와 이력서에 새겨질 뿐 아니라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라는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 이 사실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알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책장을 덮고 나면 더 이상 나의 못난 업무 감각에 몸서리치며 어떻게 하면 더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순간들이 싫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때로는 타고나지 못한 감각에 일을 망쳐서 괴로워하고, 때로는 내 감각이 가져온 성취에 기뻐하며 나의 감각을 매만져 가는 법이니까. 그렇게 일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헤매다 보면 마침내 잘 벼려진 칼날처럼 예리한 일의 감각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