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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칼럼]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 2019년 다른 선택이 부른 엇갈린 성적표

- 삼성 3분기 DS부문 실적 40% 급감...파운드리 가동률 저하, HBM 선점 놓친 후폭풍

- 엔비디아 젠슨 황 CEO...삼성전자, HBM 납품 승인 서두르겠다는 말만

- 트럼프發 변수에 韓 반도체 美행...생존 위한 변화의 시작 본격화

  • 기사등록 2024-11-25 08: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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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수연 산업부장]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가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전장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칩워(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Chris Miller)는 책에서 고 이병철 회장을 "무슨 일을 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1938년 건어물상으로 시작해 한국전쟁과 군부정권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철학으로 헤쳐나간 이병철 회장은 1980년대 초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며 운명적 선택을 한다. "이게 다 반도체 덕분이죠"라는 HP 직원의 말을 듣고 그는 결심을 굳혔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실리콘밸리의 기술 이전, 미일 무역 갈등이라는 절묘한 타이밍 속에서 삼성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다.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말처럼, 일본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려 했던 미국에게 한국의 삼성은 완벽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사정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이 되었고 미중 갈등으로 반도체 산업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현재 국내 반도체는 미국이 견제하는 중국 의존도가 높다.  지난 9월 국내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9.4%였다.  

삼성전자의 위기로 회자되는 'HBM' 시장 선점 실패도 업계에서는 '2019년 HBM 사업부 축소 결정'로 보고 있지만, 그때의 결정은 이미 시작된 삼성전자 내 갈등과 문제의식의 단면일 뿐이다. 지난 3분기, SK하이닉스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추월했다는 사실은 반도체 왕국 삼성이 직면한 엄중한 현실을 보여준다. 고 이병철 회장,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보여준 과감한 도전과 정확한 시장 판단, 그리고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이라는 성공 방정식은 오늘날 삼성에게 어떤 화두를 던지는가.

[박수연 칼럼]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 2019년 다른 선택이 부른 엇갈린 성적표삼성전자·SK하이닉스 최근 10년 반도체 실적과 히스토리(K-IFRS 연결)

◆삼성의 '품질경영' 잃어버린 시간...어디서 잘못됐나


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1995년 '애니콜 휴대폰 불량품 10만대 화형식'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로도 최고를 지향하는 집요한 노력은 계속됐다. 그런 삼성전자 파운드리 제품에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2021년 퀄컴이 주문한 스냅드래곤8에서 심각한 발열이 생긴 것이다. 결국 퀄컴은 TSMC에 생산을 맡긴 스냅드래곤8플러스로 대체했다. 이건희 회장이었다면 용납하지 않았을 일이다.


즉, 현재의 위기는 지난 2019년 HBM 조직 축소라는 잘못된 선택 탓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그런 선택이 가능해진 기업 분위기가 있었다는 의미다. 현재 삼성의 문제는 과거의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이 문제점을 찾아 시정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온 신뢰와 성찰이 사라진데서 온 결과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박수연 칼럼]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 2019년 다른 선택이 부른 엇갈린 성적표삼성전자 최근 분기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이미지= 더밸류뉴스]

삼성전자는 3분기 매출액 79조1000억원, 영업이익 9조18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4%, 57.1% 증가한 수치다. 이중 DS부문의 3분기 실적은 매출 29조2700억원, 영업이익 3조8600억원으로 전분기대비 40% 급감했다. 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55%의 점유율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41%에 머물렀다. 특히 AI 반도체의 9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의 주요 HBM 공급사로 자리 잡은 SK하이닉스는 이미 내년 물량까지 완판을 기록한 상황이다.


파운드리 사업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모바일과 PC 수요 부진으로 평택 2라인과 3라인의 가동률을 30% 이상 낮췄고, 연말까지 50%까지 축소할 계획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7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D램의 성공에 너무 오래 안주하며 조직의 긴장도가 많이 떨어져 있다'는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지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황이다.

[박수연 칼럼]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 2019년 다른 선택이 부른 엇갈린 성적표2019-2024년 1분기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분기별)

◆SK하이닉스 'HBM 완판' 속 삼성이 엿보는 기회...'HBM4 대전' 시작


삼성전자는 40년간 지켜온 '턴키' 경쟁력을 재검토하고 있다. HBM4 생산을 위해 TSMC와의 협력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월 TSMC와 손잡고 HBM4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운드리 세계 1위 TSMC의 3나노 이하 선단 공정 수율은 70~80%를 웃도는 반면, 삼성전자는 30~40%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는 최근 실적발표회에서 차세대 AI 칩 '블랙웰' 시리즈의 주요 협력사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TSMC, ASM, AMKOR 등을 직접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목록에 없었다.

HBM4부터는 제조 공정이 더욱 복잡해진다. 칩의 두뇌 역할을 하는 베이스 다이(로직 다이)를 메모리 제조업체가 아닌 파운드리 업체에서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DRAM 생산부터 로직 다이 생산, 첨단 패키징까지 턴키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지만, TSMC의 기술을 선호하는 고객들이 있어 협력을 고려하고 있다.

[박수연 칼럼]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 2019년 다른 선택이 부른 엇갈린 성적표2023년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 점유율 및 비트 출하량. [자료=Yole 인텔리전스]테슬라가 HBM4 공급사 선정을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샘플 테스트를 요청했다. SK하이닉스의 HBM4는 5세대 HBM3E보다 1.4배 빠른 대역폭을 제공하고 전력 소비는 30% 줄였다. 


모건스탠리는 HBM 시장이 지난해 40억달러에서 2027년 33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는 전체 DRAM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생산 비중은 지난해 2%에서 올해 5%, 내년 10%로, 매출 비중은 지난해 8%에서 올해 21%, 내년 30%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다. HBM3 생산 및 수주 경쟁이 심화되고 실적 반영이 본격화되면서 HBM 시장을 선점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실적 차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는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HBM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까지 물량이 이미 완판된 상태로, 추가 수요는 삼성전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이 HBM 분야의 리더가 되려면 신기술 개발을 넘어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업계의 조언을 흘려들어선 안 될 것이다.


◆미래를 이끌 반도체, 제조업 틀 깬 새로운 도전 필요성↑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전영현 DS부문장의 사과문은 삼성전자 반도체 역사상 최초의 공개 사과였다. 300명의 DS부문 인력 충원도 이어졌다. 이는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가장 강력한 혁신 의지로 평가받는다.

[박수연 칼럼]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 2019년 다른 선택이 부른 엇갈린 성적표2008-2023년 반도체 기업의 전 세계 매출 점유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삼성은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을 추구했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에 집중하며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TSMC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HBM 시장을 선점했다. 크리스 밀러 교수는 "AI 시대에 삼성같은 기업은 더 이상 기존의 전통적인 제조 업체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며 에지 AI 시장 선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과 트럼프 집권 가능성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변수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공장에 각각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자국 생산 기반 확보가 생존의 열쇠가 된 것이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닌 국가 안보의 핵심이 됐다. 미국의 칩스법처럼 각국이 반도체 주도권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한국 GDP의 1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급성장하는 SK하이닉스의 경쟁은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일상 생활의 모든 측면과 국제 경제의 큰 변화에서 반도체의 절대적인 중심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밀러의 말처럼, 두 기업의 경쟁과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역대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낼 삼성전자 반도체는 과거 메모리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와의 경쟁을 통한 상생,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 그리고 새로운 시장 선점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이병철 회장이 1983년 반도체 투자를 결정했던 것처럼, 지금은 AI 시대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ynsooyn@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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