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산업부장
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전격 철회했다. 13일 최윤범 회장의 기자회견은 사과와 쇄신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경영진의 판단 미스가 빚은 자충수로 봐야 한다. MBK파트너스·영풍과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보여준 고려아연의 일련의 행보는 주주가치와 시장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주주가치 제고' 외친 고려아연...이번엔 진정성 보여줘야
고려아연은 지난달 23일까지 주당 89만원이라는 고가에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며 '주주가치 제고'를 외쳤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만에 주가의 75% 수준인 67만원에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자사주 매입에 응한 주주들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볼 수 있다.
최 회장은 "MBK·영풍의 공개매수와 당사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종료된 후 예상치 못한 시장 상황에 직면했다"며 "당초 공개매수 종료 후에는 회사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었으나, 이러한 전망과는 전혀 다르게 시장은 2차 가처분 결정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주가의 불안정성이 가중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공개매수를 통해 유통주식이 감소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무리하게 자사주 매입을 진행한 후, 그 부담을 주주들에게 전가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의사결정 과정의 불투명성도 문제다. 장형진 영풍 고문은 지난달 30일 고려아연 이사회에 참석해 일반공모증자에 관한 제1호 의안에 대해 '거수'를 통해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의사록에는 "특별한 반대의견을 밝히지 않았음"으로 기재됐다고 주장한다. 정정 요구마저 거부당했다는 점은 고려아연 이사회 운영의 신뢰성을 돌아보게 한다.
◆'주주 중심 경영' 선언...신뢰 회복과 남겨진 과제
13일 고려아연은 대대적인 쇄신을 약속하고 나섰다. 최 회장은 "저부터 변화하고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겠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사외이사가 고려아연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외국인 사외이사 선임, IR 전담 사외이사 도입, MOM(Majority of Minority) 제도 도입도 약속했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성장 전략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 회장은 "트로이카 드라이브가 현실화되고 열매가 맺어져서 고려아연 주주가치에 기여하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신했지만, 최근 제기된 이그니오 홀딩스 인수가격 논란은 회사의 투자 판단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12일 고려아연이 지난 2022년 인수한 미국 이그니오 홀딩스의 매입가격(5800억원)이 매출액 대비 50배에 달하는 등 지나치게 높았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누가 이 회사를 경영하여야 계속하여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는지, 책임감 있는 친환경, 안전 경영을 할 수 있는지, 우리 주주님들이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최 회장의 발언은 향후 고려아연이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첫째, 고려아연은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소액주주 권리 보호에 대한 지배구조 개편을 약속에 대한 사항을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둘째, 경영 투명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번 유상증자 철회 과정에서 드러난 의사결정의 불투명성은 개선돼야 한다.
셋째, 기업 투자의 적정성과 실효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구축하고 있는 재활용 금속의 확보 및 이를 통한 친환경 금속 생산 사업이 온산제련소와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최 회장의 설명은 구체적인 실적과 성과로 입증돼야 한다.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공개매수 결제일 이후인 지난달 18일부터 11일까지 고려아연 28만2천366주(발행주식총수의 1.36%)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기존 38.47%에서 39.83%로 증가했다.
현재 MBK·영풍 측이 39.83%, 고려아연 경영진 측이 35.42%의 우호지분을 보유한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저희를 믿고 지지해 준 분들은 주주님들이었다"는 최 회장의 말처럼, 결국 주주들의 신뢰 회복이 경영권 방어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려아연이 진정한 주주 중심 경영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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