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산업부장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일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연대는 3자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3월 소액주주연대가 OCI그룹과의 합병 반대를 이유로 형제(임종윤·종훈) 측을 지지했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신동국 회장이 보여준 '행동하는 리더십'과 상속세 해결을 위한 1644억원의 과감한 투자, 소액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표심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 임시주총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의 움직임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미약품의 미래가 걸린 이번 주총,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소액주주연대 3자연합 전격 지지선언...8개월만에 표심 선회한 이유
1일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연대가 3자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3월 형제(임종윤·임종훈) 측을 지지했던 소액주주연대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한국 재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 한 기업 안에서 지속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왜 입장을 바꿨을까?
소액주주연대는 신동국 회장이 보여준 '행동하는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신동국 회장은 1644억원의 사재를 동원해 모녀의 상속세 문제 해결에 나섰다. 주식 매입 가격도 시가보다 높은 3만7000원선이었다. 시장의 혼란을 잠재우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난달 30일 신동국 회장과 소액주주 간 간담회에서 신동국 회장은 소액주주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포용적 자세를 취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수십 년간 임성기 창업회장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현재 갈등 관계인 임종훈 대표에 대해 "상속세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찾아온다면 상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이때였다.
상속세 해결이 주가 정상화의 열쇠라고 본 소액주주연대는 형제 측의 재무상황도 꼼꼼히 들여다봤다. 형제 측은 각각 2천억원 내외의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소액주주연대 측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임종윤 사장은 임주현 부회장 대여금 미상환으로 주식 등 재산에 가압류까지 걸린 상태다.
◆형제 경영, OCI 합병 막았지만...약속은 실종되고 주가는 떨어졌다
지난 3월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의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였던 송영숙 회장이 지분 확보에 실패하면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지휘봉을 잡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소액주주들은 한미사이언스와 OCI그룹의 합병에 반대하며 형제 측을 지지했다. 이들은 통합 과정에서 한미그룹의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됐고 '신주발행 가격'에 문제가 있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이 무시된 저가 신주 발행'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형제 측이 경영권을 장악한 후에도 주가는 속절없이 하락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보이지 않았다.
주가는 정기주총이 있었던 3월말 4만4000원대에서 출발해 임종윤·종훈 형제가 경영권을 잡은 5월말 3만300원까지 떨어졌다. 7월 초 신동국 회장과 송영숙, 임주현 모녀의 합심으로 3만3000원대 후반까지 반등했으나 이후 하락과 상승을 반복해왔다. 지난 31일 신동국 회장 간담회 이후 5만2500원 최고가를 찍고 1일 현재 3만8100원을 기록 중이다.
소액주주연대가 지난 24일 양측에 보낸 서면질의에서 임종윤 사장의 답변은 기대에 못 미쳤다. 5인의 대주주 중 유일하게 서명이 누락됐고, 3월 주총에서 약속한 내용에 대한 답변도 없었다. 소액주주들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소액주주연대 측은 "반면 3자연합은 3인 모두 서명했고 신동국 회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소액주주 간담회를 자청했다"고 전했다.
소액주주연대는 간담회를 통해 신동국 회장이 소액주주들과 가장 유사한 이해관계를 가졌다고 판단했다. 주식수만 많을 뿐, 그도 개인주주라는 것이다. 3월에는 OCI 반대를 위해, 이번에는 상속세 해결을 위해 움직인 신 회장의 행보를 소액주주들은 높이 샀다.
◆임시주총 D-27...'글로벌 도약' 갈림길에 선 한미약품, 정체성 잃지 않아야
오는 28일 임시주총이 다가오고 있다. 주요 안건은 △이사회 정원을 10명에서 11명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 △임주현·신동국 이사 2인 선임 △자본준비금 감액이다. 정관 변경을 위해서는 주총 참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3자연합(48.13%)과 형제 측(29.07%)의 지분을 감안하면, 소액주주(23.25%)와 국민연금공단(6.04%)의 표심이 중요한 승부처가 될 것이다.
이번에 3자 연합 측에 힘을 실은 소액주주연대는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가입자이며, 지분 2.26%를 보유하고 있다. 소액주주연대는 소액주주들이 다가오는 임시주총에서 3자 연합에 의결권을 보태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 주주총회 직후 임종윤·종훈 형제는 "어머니, 여동생과 같이 가길 원한다.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주주들에게 전하며 회사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 기존에 한미를 퇴사한 분들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8개월 그들의 행보는 이 말에 어떤 책임을 졌는지 돌아봐야 한다.
한미그룹이 경영권 분쟁으로 본연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혁신신약 개발'이라는 창업주의 뜻을 계승하되,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안정화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아가길 기대한다.
한미약품은 이번달 미국 비만학회에서 새로운 비만치료제 연구결과 발표와 13개의 연구과제에 대한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글로벌 신약 기업으로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R&D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한미사이언스 측도 마찬가지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5일 소액주주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R&D 외연확장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제시하며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이제 성공 방식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기본 업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말이 아닌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속세 문제 해결, 주주가치 제고, R&D 역량 강화 등 산적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누가 승리하든 한미약품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야 한다. 소액주주들의 지지는 그에 대한 기대이자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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