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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진의 오늘 고민 해결책] ⑥ 호랑이굴에서 사는 아이를 보면 꼭 말해 주어라

  • 기사등록 2024-10-22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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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직장인이 할 법한 일상의 고민들을 꺼내어 나누고 해답을 들려주는 '박소진의 오늘 고민 해결책'을 연재합니다. 출판편집자가 서점가에 나온 책을 직접 읽고 고민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특급 해결책'을 선별하여 소개합니다. 박소진은 MZ세대와 호흡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더밸류뉴스=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

어릴 적 나는 ‘천사 소녀 네티’나 ‘코난’, ‘세일러문’처럼 정의로운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을 바꾸고, 약자를 지키며, 올바른 길을 걷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은 꽤 머리가 자라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것처럼 보일) 고등학생 어린애에게 어른들은 웃으며 말했다. “정의라니, 참 귀엽구나. 네가 내 나이가 돼 보면 알 거야.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들은 어른이 된다는 게 그저 생존의 반복이라고 이야기했다. 가장 슬픈 점은, 내가 결국 그들의 말처럼 자라나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급급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2022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OECD 22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일등을 하지 못할 바에는 꼴등이라도 하자는 건가. 하지만 통계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다섯 걸음마다 ‘노키즈존’이 등장하고, 임산부석은 정작 임산부가 아닌 어른들로 항상 만석이다.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파우더룸을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하고, 건물의 구석진 곳을 돌아 들어가야 겨우 하나쯤 나타난다. 신문 기사로 양육자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매년 보도되지만, 잠시 불타오르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또 다른 이슈가 나타나면 한 생명의 죽음따위는 금세 잊힌다. 정의는커녕,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고, 세상에 정의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여기, 그렇게 아슬아슬한 사회에서 생존해 가까스로 어른이 된 이야기가 있다. <우리집에 호랑이가 산다>는 그렇게 사회로부터 소외 받고 가정 폭력에 노출된 채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박소진의 오늘 고민 해결책] ⑥ 호랑이굴에서 사는 아이를 보면 꼭 말해 주어라'우리집에 호랑이가 산다'. 고호 지음, 뿌리와이파리. [이미지=알라딘]

만화는 삐뚤빼뚤 아이들이 크레용으로 그린 낙서처럼 이어진다.


“호랑이는 우리 가족만의 비밀이래. 다른 아이들 집에는 없을 테니까.”


재이네 집엔 호랑이가 산다. 재이와 동생 재민이가 울면 호랑이가 나타난다. 아이들의 집에 사는 호랑이의 존재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르지 못해 지저분한 손톱, 멍투성이 팔을 감추기 위해 입은 긴팔 옷, 준비물 살 돈을 달라고 하지 못해 늘 준비물이 없는 빈 책상. 이런 징후들로 아이들이 처한 현실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이 책은 사실 만화의 형식을 빌린 에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만화 팬들이 기대할 수 있는 만화적 연출이 가미되어 있지 않은, 그림책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저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자전적 사건의 재구성으로, 단순히 한 아이가 겪은 가정 폭력에 대한 것뿐 아니라 아이가 자라며 경험하고 느끼는 일상의 크고 작은 폭력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다.


“호랑이굴에 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빨간 망토 슈퍼맨이 아니야. 우리 같은 아이들이 여기 이렇게 있다고 알아봐주고, 손 내밀어주는 그냥 보통의 어른.”


호랑이가 사는 집에서 살아남아, 그 밖에도 끊임없이 세계로 침투하는 외부의 폭력들에 의연하게 맞서며 어른이 된 저자의 목소리는 의연하고 담대하다. 저자는 말한다.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아이를 구하는 것은 대단한 정의감을 지닌 슈퍼맨이 아닌, 보통의 어른이라고.


나는 어릴 적 정의로운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그저 먹고사는 데 급급해 그런 일에는 무관심한 어른으로 자라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라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봄직하다. 먹고사는 데 급급한, '정의' 운운에 코웃음치는 평범한 어른으로도, 호랑이굴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박소진의 오늘 고민 해결책] ⑥ 호랑이굴에서 사는 아이를 보면 꼭 말해 주어라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 


rely0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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