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강정보기술 회사 아테나헬스를 창업한 조너선 부시 전 CEO는 2017년 5월초 까지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1997년 아테나헬스를 창업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의료사업자의 환자 진료 기록과 비용 청구서를 디지털화하는 사업으로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 고객 10만 곳, 연간 매출 10억달러가 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여기저기서 기고문 요청도 쏟아졌다.
◆ 엘리엇, 목적 달성 위해 사생활, 인신 공격도 마다하지 않아
그의 이같은 장미빛 인생은 2017년 5월 중순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아테나헬스 지분 매입을 사실을 공개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당시 엘리엇은 아테나헬스가 저평가됐다며 지분 9.2% 매입 사실을 발표하고 1억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 등 주가 부양책을 요구했다.
조너선 부시는 몇차례 설전을 벌이다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것으로 문제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문제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엘리엇은 "조너선 부시는 경영 능력이 부족하므로 회사 발전을 위해 일선에서 퇴진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또, 회사를 상장 폐지해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판단한 조너선 부시는 일전을 각오했다. 였기에 일전을 각오했다
그러자 엘리엇은 그의 경영 능력을 비판하는 자료를 발표해 여론전에 나섰다. 자료에는 부시에 대한 회사 임직원들의 불만도 담겨 공개됐다. 엘리엇과 연대한 다른 주주들의 압박도 이어졌다. 주주들은 엘리엇의 개인적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모욕과 인격 비하를 서슴치 않았다. 믿고 의지했던 일부 주주들의 배신을 목격하면서 조너선 부시는 배신감과 좌절감에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부시는 자신의 10여년전 과거 이혼 소송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부인을 폭행했던 사실이 갑자기 언론에 보도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10여년전의 소송이 어떻게 해서 그 시점에 갑자기 표면화됐는지 조너선 부시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결국 부시는 자신의 윤리적 문제로 언론의 집중타를 맞고 CEO를 그만뒀다. 엘리엇이 요구한 상장 폐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회사는 엘리엇과 사모펀드 베라티스 캐피털로 57억달러에 매각된 이후 베라티스가 소유한 제너럴일렉트릭(GE) 헬스케어에 인수됐다. 엘리엇의 지분 매입 공개 시점부터 GE 헬스케어에 인수될 때까지 회사 주가는 50% 뛰었다.
부시는 "엘리엇과 싸우는 동안 누군가 내 머리에 총구를 대고 있는 듯했다. 차라리 방아쇠를 당기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당시의 고통을 회상하고 있다. 부시는 엘리엇을 '종말을 부르는 투자자'라고 비난하고 있다.
조너선 부시의 사례는 미국에서 주주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잔인하고 냉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머리에 총구를 대고 있는 듯했다"는 부시의 발언처럼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공격 대상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괴롭힌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포장하면서 '비용 삭감', '경영진 교체', '기업 분리·매각' 등을 요구하며 경영권 간섭에 나서 주가를 띄운 다음 뒤로 빠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공격 기업을 상대로 위임장 전쟁을 벌이거나 공개 서한을 통해 법적 문제 등을 일일이 제기, 기업을 코너로 몰기도 한다. 공격 대상 경영진에게 불리한 사적 정보도 언론에 흘리길 마다하지 않는다. 폴 싱어가 이끄는 엘리엇뿐 아니라 넬슨 펠츠가 회장으로 있는 트라이언 파트너스, 칼 아이칸이 소유한 아이칸 엔터프라이스 등이 이 같은 전략을 쓰는 대표적인 펀드들이다.
◆ 한국서도 미국식 주주행동주의 표면화 가능
이런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한국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진단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한 강화 정책,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확산은 주주행동주의가 자리잡기에 알맞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적은 자본을 투입해 고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으로 인식돼 있어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관심이 집중된 국가 중 하나다. 주요 기업의 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계열사끼리 복잡한 상호출자 구조로 얽혀 있어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 경영권 승계나 계열사 간 지분 개편을 앞둔 주요 국내 기업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이야기는 현실이다.
싫든 좋든 주주행동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투자은행 JP모간에 따르면 아시아에 초점을 둔 행동주의 캠페인(움직임)은 2011년 10건에서 2017년 106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2013~2016년에 아시아에서 공개적으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타깃이 된 기업 수는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이런 현상이 한국과 일본에 집중돼 발생하고 있다.
특히 10년 넘게 장기적으로 삼성전자를 노렸던 엘리엇이 2016년 마침내 삼성전자를 통해 이익을 거두면서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 사이에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다 결국 수백억원대 손실을 봤지만, 2016년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요구 땐 큰 이익을 거두었다. 엘리엇은 0.62%의 보유 지분으로 삼성전자 분할 및 삼성전자 사업회사 나스닥 상장, 자사주 전량 소각, 30조원 특별배당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엘리엇 요구를 모두 거부했지만 자사주 49조3000억원어치 전량을 소각했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한국에서 주주행동주의는 이제 막 시작 단계"라며 최근의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적은 지분만으로도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기업뿐, 보유현금이 많은 기업, 주가수익배율(PER)이나 주가순자산배율(PER) 등 밸류에이션이 낮은 회사들은 주의가 필요하다"며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을 피하고 싶다면 우선 기업 스스로가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