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의 고질적 난제인 자동차보험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한 정부의 '8주 룰(경상환자 장기치료 심의제도)' 도입이 가시화되며, 개별 보험사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 기업 가치의 핵심 지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대형 손보 4사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90%를 상회하는 등 실적 하방 압력이 커진 가운데, DB손해보험(대표 정종표)은 정부 정책보다 한발 앞선 '디지털 보상 시스템'을 구축하며 업계 리스크 관리의 표준을 다시 쓰고 있다.
◆ 정부 '8주 룰' 가이드라인 마련…데이터 잣대가 생존 결정
DB손해보험이 데이터 기반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이미지=더밸류뉴스]
정부 주도의 보험금 누수 방지책인 ‘8주 룰’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달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은 경상환자의 성별, 상해 급수, 치료 방법 등을 분석해 적정 치료 기간을 도출하는 시스템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12일에는 2차 실무 회의를 개최하며 세부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이 제도는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던 보상 체계를 객관적 데이터로 전환하는 실무적 근거가 될 전망이다.
‘8주 룰’은 타박상이나 염좌 등 상해 등급 12~14급의 경상환자가 8주를 초과해 치료를 받을 경우, 객관적인 심의를 거쳐 장기 치료의 필요성이 인정되어야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경상환자의 90% 이상이 8주 이내에 치료를 종료한다는 사실에 기반했다. 관행적으로 지급되던 ‘향후 치료비’ 지급 기준을 명문화하고 ‘나이롱 환자’에 의한 보험금 누수를 차단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12월 기준 대형 손보 4사(삼성·DB·현대·KB)의 자동차 손해율은 96.1%까지 치솟으며 최근 6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4년간 이어진 보험료 인하와 경상환자의 과잉 진료가 맞물리며 수익성이 한계치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보상 체계 수립만이 선량한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막고 자동차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누수 시스템'으로 비표준 영역 정복…데이터 주도권 선점
피칸소프트 기업 홈페이지 UI. [이미지=더밸류뉴스]
이러한 거시적인 제도 변화 속에서 DB손보의 선제적 대응은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기술 스타트업 피칸소프트와 협력해 수작업 위주였던 '누수 손해사정' 업무를 전면 디지털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경상환자 보상만큼이나 기준이 모호해 '부르는 게 값'이었던 누수 사고 영역에 웹 기반의 객관적 데이터 잣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8주 룰'의 취지를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구현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DB손보는 보상 직원의 주관이나 관행적인 합의 대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정 보상 범위를 산출해 보험금 누수를 차단하는 '디지털 방파제'를 세웠다.
DB손보 관계자는 “이번 협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개방형 혁신으로 보험사 본연의 보상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나아가 보험산업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한 중요한 사례”라며 “앞으로도 고객 경험 향상과 업무 고도화를 위한 스타트업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종표 대표의 효율 경영, 시스템이 펀더멘털을 만든다
정종표 DB손해보험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DB금융센터에서 '청소년 불법도박 근절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DB손해보험]
이러한 '데이터 집착'은 정종표 대표가 강조해 온 '경영 효율 우위' 전략의 결실이다. 정 대표는 취임 이후 줄곧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개방형 혁신"을 독려하며, 보험사가 병원이나 업체에 끌려다니지 않는 '주체적인 리더십'을 주문해 왔다.
단순히 보험금을 깎는 것이 아닌, 데이터를 통해 지급할 곳엔 정확히 지급하고 새는 곳은 완벽히 막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DB손보가 손해율 위기 속에서도 견실한 보험계약마진(CSM)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연결 기준 CSM 잔액은 13조1750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최상위권의 기초 체력을 입증했다. 특히 신계약 CSM 배수(이익률)가 14.5배에 달하며, 경쟁사 대비 높은 수익성을 확보해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그저 외형을 키우는 것이 아닌, 고수익 보장성 보험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며 내실을 다진 결과로 풀이된다.
◆ 데이터 주도권 확보, 주주환원 자신감으로 '밸류업' 완성
서울시 강남구 DB손해보험 본사 전경. [사진=DB손해보험]
DB손보는 보상 시스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요양 및 펫보험 등 보상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전 영역으로 디지털 규격화를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의 제도 개선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보상의 표준을 선도해 시장의 '데이터 주도권(Hegemony)'을 확보하겠다는 행보다.
이러한 시스템 경영은 실질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DB손보는 지난 4일 실적 둔화에도 불구하고 2025년 결산 주당 배당금을 전년 대비 11.8% 상향한 7600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2028년까지 주주환원율을 35%로 확대하겠다는 밸류업 약속의 이행이며,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바탕으로 한 자본 건전성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DB손보 관계자는 “향후에도 안정적인 지급여력비율(K-ICS) 관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주환원정책을 검토하여 지속적으로 주주가치를 제고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