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젠슨 황 CEO는 SK하이닉스에 대해 "엔비디아의 가장 큰 메모리 파트너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함께 멀티 플랫폼, 멀티 기술 기반의 장기 파트너십을 맺고 로드맵을 함께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현재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권력 지형을 정확히 보여준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글로벌 행보와 맞물려, SK하이닉스가 과거의 단순한 범용 부품 공급사를 넘어 글로벌 AI 생태계를 주도하는 '핵심 설계 파트너'로 진화했다는 평가다.
◆ 대만 파운드리·미국 AI 소프트웨어 도입…SK하이닉스가 짠 '삼각 연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TSMC와 글로벌 AI 반도체 삼각 연대 구조를 구축했다. 차세대 HBM4 공정 및 신규 AI 플랫폼 전 영역에서 맞춤형 협력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최태원 회장은 지난 3일 대만을 찾아 웨이저자 TSMC 회장과 회동하며 '글로벌 AI 반도체 동맹'을 다졌다. 이는 엔비디아의 AI 플랫폼, TSMC의 첨단 파운드리, SK하이닉스의 HBM 기술을 잇는 강력한 'AI 반도체 삼각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부터 TSMC의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해 베이스 다이(Base Die)를 제조할 예정이다. 베이스 다이는 HBM의 하단에 자리한 반도체로, 메모리의 동작을 제어하고 데이터를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TSMC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성능과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고,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맞춤형 AI 메모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의 혁신은 하드웨어 제조에만 머물지 않는다. 엔비디아 소프트웨어인 '쿠다-X(CUDA-X)'와 '피직스네모(PhysicsNeMo)' 등 AI·물리 시뮬레이션 솔루션을 반도체 설계와 제조 과정에 도입하고, 반도체 설계 자동화와 시뮬레이션 분야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히 개발 속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메모리 제조사가 플랫폼 기업의 개발 환경을 활용해 차세대 반도체 설계 단계부터 협업 체계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차세대 칩 설계 초기 단계부터 파트너사의 로드맵과 기술적 동기화를 이뤄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 인프라·퍼스널·피지컬 AI…신시장에 꽂히는 '메모리 엔진'
SK하이닉스의 '풀스택(Full-Stack) AI 메모리' 비전은 시장 다변화를 통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기존 데이터센터 중심의 수요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AI 신시장에 '맞춤형 메모리 엔진'을 장착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엔비디아의 차세대 데이터센터용 AI GPU '베라 루빈(Vera Rubin)'은 물론, 개인용 AI 시대를 열어갈 PC용 칩 'RTX 스파크', 그리고 휴머노이드와 산업용 로봇 등 피지컬 AI 시장을 겨냥한 '젯슨 토르(Jetson Thor)' 등 신규 플랫폼 전 영역에 걸쳐 최적화된 맞춤형 메모리를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이는 기존 주력 시장인 대규모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넘어, 온디바이스 기반의 퍼스널 AI와 로봇 등 피지컬 AI 생태계 전반으로 맞춤형 메모리 공급 영역까지 진출하려는 전략이다.
더불어 지난해 4분기에는 자회사 '솔리다임'을 앞세운 고용량 기업용 SSD(eSSD) 시장에서 전분기 대비 75% 성장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30%를 돌파하며,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대용량 저장장치 라인업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