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7일 풀무원은 자회사인 풀무원식품의 상환전환우선주의 상환청구 및 소각을 위해 20만7143주의 우선주를 163억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풀무원의 상환전환우선주 상환의 시작은 3년전 2015년 12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5년 12월 29일 풀무원식품은 운영자금 약 500억원(499억9995만원)의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상환전환우선주 발행을 결정했다.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한 회사는 우선주 발행 후 3년이 되는 날 30일전부터 상환일 만료일까지 우선주의 50%에 해당하는 주식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제1호의 상환가액으로 상환할 권리를 갖는다.
발행회사가 우선주를 상환하고자 하는 경우 상환일로부터 최소 3주전에 우선주의 주주에게 상환대상주식수 및 상환가약을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왜 풀무원은 상환전환우선주를 상환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상환전환우선주식(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hares, RCPS)이란 주식의 일종으로서, 보통주식에 상환권과 전환권, 그리고 우선권을 부여한 특수한 형태의 주식이다. 채권처럼 만기 때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 이익배당이나 잔여재산 분배 시 보통주보다 유리한 권리를 가지는 우선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종류주식이다. 상환전환우선주는 국제회계기준(IFRS)상 부채로 분류되지만 주주 뿐 아니라 회사도 상환권을 가지면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업이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하는 이유로는 제품 연구개발 및 생산을 위해 초기 투자자금 조달이 절실한 스타트업이나 일시적인 자금 경색을 겪고 있어 운영자금 지원이 필요한 기업 혹은 대외적 신인도 확보를 위해 명망 있는 투자기금의 참여가 필요한 사모펀드 등에서 좋은 조건으로 상환전환우선주식을 발행해 외부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풀무원은 지난해 3월에도 아이비케이에스그린 사모투자합자회사에 40만3458주의 상황전환우선주를 발행했다. 유상증가로 조달하는 자금 700억원 가운데 20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나머지 500억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으로 사용한 이력이 있다.
◆풀무원식품, 해외사업 4년째 적자 지속이 재무안정성에 악영향으로 이어져
풀무원식품의 경우 해외사업 투자 등으로 재무구조가 불안정해진 탓에 자금을 차입하지 않고 자본으로 분류되는 RCPS를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풀무원식품은 내수시장의 성장둔화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일본과 중국으로 해외사업을 확대했으나, 계속해서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법인의 적자가 풀무원식품의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풀무원 미국법인의 순손실은 지난 2014년 173억원, 2015년 249억원, 2016년 279억원, 2017년 3분기 누적기준 171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일본법인인 아사히코의 순손실은 2014년 78억원, 2015년 130억원, 2016년 96억원, 2017년 3분기 누적기준 61억원을 냈다.
이어 중국법인 상해포미다식품유한공사는 2014년부터 2017년 3분기 말까지 12억~1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북경포미다식품유한공사도 22억~4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미국 시장에서 두부제품군 점유율이 높은 편이지만, 소비층이 주로 한국교민과 아시아인이라서 시장규모가 작고 성장성이 낮다. 기타 주력제품인 파스타 소스 매출은 경쟁과열 등으로 감소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중국인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고 인지도가 낮아 저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일본에서는 두부제품의 수요기반이 양호하나 경쟁이 치열해 풀무원식품은 판매가격 인하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수익성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한편 풀무원식품의 유동성비율은 8%로 안전성이 낮은 상태이다. 안정성은 100%이상이면 안전, 100%미만이면 위험한 상태이다.
RCPS는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여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환가격의 사후적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는 위험성도 공존하고 있다.
실제 상환전환우선주식의 전환가격 조정에 의해 기업의 경영권이 넘어간 M&A 사례가 있다. 바로 STX에너지 사례다.
STX에너지는 STX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로, 북평화력발전소사업권 등을 보유하고 있어 성장가능성이 높았으며, 2012년 기준으로 STX그룹 계열사 중 수익을 내는 거의 유일한 계열사였다. 당시 STX에너지의 자본금은 527억 원, 자산 1조 6,791억 원, 매출액 1조 2,873억 원, 당기순이익 303억 원 규모였다.
주요 사업영역은 열병합발전소 운영과 자원개발 사업이었는데, 주로 해외에 자원개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호주 로이힐철광산, 캐나다 맥사마시가스광구, 중국 평정탄광, 아일랜드 유전광구, 우즈베키스탄 수르길가스광구 등이 주요 자산이었지만 사실상 자산 가치는 거의 없었다.
STX그룹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조선 및 해운업계의 불황으로 STX조선해양, STX팬오션 등 주력 계열사가 자금난을 겪기 시작하면서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가 악화되기 시작, 결국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STX그룹은 STX에너지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STX그룹은 종래 협력 관계에 있던 일본 오릭스 그룹과의 협의 끝에 2012년 12월 구주 매각 1,210억 원, 전환우선신주 발행 970억 원, 상환전환우선신주 발행 970억 원, 교환사채 발행 450억 원 등 합계 3,600억 원의 방법으로 오릭스 그룹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런데 STX그룹 측은 재무구조의 개선을 위해 시간에 쫓기다 보니 불리한 독소 조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사후적 자산평가에 따른 전환가격 조정이었다. 신주 전환가격은 STX에너지가 해외에 투자한 자산들(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해 사후적으로 6개월마다 가치를 평가해 조정 가능하도록 했는데, STX에너지의 해외 자산은 사실상 그 가치가 제로에 가까웠으므로 신주 전환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STX그룹이 과반수 지분 및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지만 신주 전환가격의 사후조정을 통해 언제든지 오릭스 그룹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다. 또한 STX그룹의 재무상태가 악화돼 주요 계열사가 은행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거나 회생절차, 파산 등의 절차가 진행될 경우 교환사채의 교환권 행사 또는 신주의 전환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합의되었다(Trigger Event).
그 후 주지하다시피 STX그룹은 2013년부터 채권단 공동관리 및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었고, 오릭스 그룹은 조정된 전환가격으로 교환권 및 전환권을 행사해 STX에너지의 과반수 지분을 확보한 후 산업은행의 중재 아래 STX에너지의 지분 전체를 인수하고 이를 다시 2014년 2월, GS그룹에 되팔아 단기간에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실무에서 흔히 사용되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 방식에 의한 M&A에 있어, 자칫하면 경영권이 헐값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인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풀무원은 자회사인 풀무원식품의 상환전환우선주를 상환함으로써 기업의 경영권을 지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