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액 5000억원.
제약사가 미들급을 넘어 메이저로 점프하게 되는 '허들(huddle)'로 불린다. 한국 제약 비즈니스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연매출액 5000억원을 넘는 제약사는 그 다음부터는 사뿐하게 '1조 클럽'으로 진입하는 것을 보게 된다(한국 인구가 약 5000만명인 것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그렇지만 연매출액 5000억원 허들을 앞두고 좌절하는 제약사가 적지 않다. 멀리는 D약품이 그랬고 가깝게는 Y약품이 그랬다.
동국제약(대표이사 송준호)이 '연매출액 5000억 허들'을 가뿐히 넘으면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사이즈를 키워왔고 2025년 매출액 '1조 클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가 실현되면 또 하나의 메이저 제약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최근 9년 연평균 매출액 13.42%↑... 2025년 매출액 1조 육박 전망
동국제약의 최근 9년 매출액 연평균증가율(CAGR)은 두 자리수(13.42%)에 이르고 있다. 6년전만 해도(2016년) 3000억원을 겨우 넘었던 매출액이 지난해 약 두 배인 6616억원을 기록했다(이하 K-IFRS연결). 국내 제약사 상당수가 인구 감소로 성장 정체에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동국제약은 지난해 매출액 6616억원, 영업이익 632억원, 당기순이익 63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비 각각 11.34%, 15.03%, 3.59%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동국제약의 올해 매출액이 7000억원대에 도달하고 2025년이면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에 띠르면 2025년 동국제약은 매출액 9423억원, 영업이익 1488억원, 순이익 95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실적도 양호하다. 동국제약은 올해 2분기 매출액 1859억원, 영업이익 129억원, 당기순이익 10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매출액은 9.4% 증가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5.5%, 36.0% 감소했다.
상반기(1~6월) 결산을 해보면 매출액 366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9.26% 증가해 역대 반기 최대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22억원, 당기순이익은 264억원을 기록해 전년동기대비 각각 25.71%, 17.55% 감소했다. 수익성이 저하된 것과 관련, 동국제약측은 “마데카프라임 광고비와 더불어 유통을 주로 마진이 적은 홈쇼핑, 인터넷으로 진출하다 보니 감소했다”고 밝혔다.
동국제약의 매출액 증가율은 국내 제약업계에서 최상위권이다. 기업분석전문 버핏연구소가 국내 주요 제약사의 최근 4년 매출액 CAGR을 조사한 결과 동국제약은 3위(13.35%)를 기록했다. 1위는 HK이노엔(14.60%), 2위는 보령제약(13.37%)이었다.
◆헬스케어 키워 2025년 '1조 클럽' 목표
동국제약은 질환 치료제에 강점을 갖고 있다. 구강질환치료제 시장(59.7%)과 부인과 질환 치료제 시장(80.6%)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피부질환 치료제 시장에서도 동화약품(58.1%)에 이어 2위(41.9%)를 기록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에 친숙한 브랜드로는 잇몸·구강질환치료제 인사돌, 부인과 질환 치료제 훼라만큐, 피부질환 치료제 마데카솔, 조영제(造影劑·검사나 시술 과정에서 조직이나 혈관이 잘 보이도록 인체에 투여하는 약물) 파미레이 등이 있다.
동국제약의 매출액 증가는 그간 모든 사업 부문에서 골고루 이뤄졌다. 그렇지만 향후 매출액 1조 클럽 달성의 열쇠는 헬스케어 부문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동국제약의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헬스케어(화장품 포함)가 1위(29.7%)이고 전문의약품(ETC) 24.8%, 일반의약품(OTC) 19.9%, 해외 매출 8.6%로 구성돼 있다.
헬스케어 사업부는 화장품 사업, 건강기능식품 사업, 생활용품 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국제약 사업보고서에는 "헬스케어 사업부는 당사(동국제약)의 2025년 매출 1조 달성 목표를 향한 성장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동국제약 IR자료에 따르면 헬스케어부문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및 유통 채널 다변화를 통해 매출액이 연평균 19.6% 성장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지속적인 마케팅과 홈쇼핑, 온오프라인 등 유통채널 다각화로 매출액이 증가했다”며 “천연 의약품 원료 기반의 더마코스메틱 제품 강화 및 다양화가 매출액 성장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건기식원료개발과 활용품 신규 라인업도 매출액 증가에 기여했다.
◆권기범 회장, 21년만에 연매출액 300억→6000억 20배↑
동국제약의 이같은 성장은 오너 2세 권기범(56) 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권기범 회장은 고(故) 권동일(1938~2001) 동국제약 창업주 장남으로 1994년 동국제약에 입사했고 부친 타계로 2002년 34세에 대표이사를 맡았다. 상처 치료제 마데카솔, 조영제 파미레이 등의 핵심 약품 키우기에 주력해 2002년 취임 당시 300억원대였던 매출액을 지난해 6000억원대로 21년만에 20배 점프시켰다. 서울 용산고,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던버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수학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최고경영자과정과 트리움 글로벌 EMBA(Trium Global EMBA) 과정을 수료했다. 성과를 중요시하는 워커홀릭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권 회장은 동국제약그룹 지주사인 동국헬스케어홀딩스 최대주주(50.80%)이자 동국제약의 개인 최대주주(19.17%)이다. 권 회장 장남 권병훈(28)씨는 동국헬스케어홀딩스와 동국제약 지분을 소량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동국헬스케어홀딩스 지분을 살펴보면 권 회장(50.80%)외에 동생 권재범씨, 아들 권병훈씨, 여동생 권수연씨 등이 보유하고 있다. 권수연씨는 권동일 창업 회장의 2남2녀중 장녀이자 권기범 회장 여동생이다.
동국제약은 권동일 창업 회장이 1968년 설립한 무역회사 UEC(United Engineering)가 전신이다. 권 회장이 1970년 프랑스 라로슈나바론(현 로슈)로부터 상처 치료제 ‘마데카솔’을 국내로 들여오며 제약사로 변신했다.
지난해 1월 임원 인사에서 신임 동국제약 대표이사에 송준호 전 전략기획실장이 선임됐다. 송준호 신임 대표는 미국 미시건대 경제학과와 메사추세츠공대(MIT) MBA(경영학석사)를 받았다. 국내외 경영 컨설팅, 투자회사에서 근무했다. 지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동국제약 전략기획실장으로 재직했다. 2019년 신약 개발기업 에필바이오사이언스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 2021년 말 동국제약 총괄사장으로 복귀했다.
CFO(최고재무책임자)에는 박희재 부사장이 임명됐다. 박 부사장은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에서 금융 컨설팅과 기업자금조달 본부장을 역임했다.
또, 전략기획실장에는 정문환 전무가 선임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래에셋증권에서는 기업공개(IPO) 업무를 맡았다. 종속회사 동국생명과학의 향후 IPO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약은 50여년 동안 서울 삼성역 근처에 사옥을 유지했다가 지난해 서울 강남 청담동으로 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