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혁신의 성과가 더딜 경우 어떤 결과를 맞을 수 있는 지를 생각하게 해주네요. 삼양그룹이 거북이라면 경쟁사들은 성큼 성큼 앞서 가는 토끼라고 할까요."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의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 리스트에 나오는 삼양그룹(회장 김윤)의 그간의 순위 변동을 살펴본 재계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삼양그룹은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67위를 기록했다. 전년비 7계단 하락했다. 삼양그룹의 그간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를 살펴보면 2020년 이름을 올렸고(64위), 2021년 65위, 지난해 60위에 이어 올해 67위를 기록했다. 이번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삼양그룹은 계열사로 삼양사, 삼양패키징, 케이씨아이(이상 상장사), 삼양바이오팜 등 13곳을 갖고 있고 그룹 전체 매출액 4조7730억원, 순이익 2260억원을 기록했다.
삼양그룹 만큼 한국인들 사이에 세대별로 지명도 편차가 극을 달리는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금의 시니어 세대에게 '삼양(三養)=재계 TOP 그룹'으로 기억된다. 실제로 삼양그룹은 1950년대 중반 매출액 기준으로 재계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삼양그룹의 기원은 1924년 전라도 만석꾼 김연수(1896~1979) 회장이 설립한 삼수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지만 지금의 MZ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삼양=삼양식품'이다. 불닭볶음면, 삼양라면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K-푸드'를 알리고 있는 바로 그 삼양식품이다(삼양그룹과 삼양라면은 '삼양(三養)'이라는 한자도 동일하다). 이같은 인지도 변화 때문에 삼양그룹은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에 "삼양그룹은 라면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리는 동영상을 올렸다. 삼양그룹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삼양그룹의 실적은 해마다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 4조7730억원, 순이익 2260억원으로 전년비 매출액은 3.46%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59.21% 감소했다. 2020년 실적(매출액 3조6470억원, 순이익 1260억원)과 비교하면 매출액 연평균증가율(CAGR) 9.38%이다.
앞서 언급한 '불닭볶음면'의 주인공 삼양식품의 매출액 추이를 살펴보면 2018년까지만해도 매출액이 5000억원을 넘기 못했지만(4694억원) 불과 5년이 지난 올해 1조원 돌파가 예상되고 있다. 연평균증가율로 계산해보면 14.13%이다. 여기에다 삼양식품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내수 기업에서 'K-푸드 스타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
삼양그룹과 업력과 비즈니스 모델에서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OCI의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는 38위로 전년비 5계단 상승했다. OCI는 일찌감치 태양광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밀어부쳐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아찔할 정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헬스앤웰니스, 친환경, 첨단사업의 3대 신성장동력 성과 미흡
재계에서는 "'삼양식품'하면 '불닭볶음면', 'OCI'하면 '태양광'이 떠오르는데 '삼양그룹'하면 확실한 무엇을 떠올리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삼양그룹에 신성장동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윤 회장은 지난해 9월 창립 98주년을 맞아 "헬스앤웰니스, 친환경, 첨단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발굴해 글로벌 스페셜티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현재의 식품(삼양사, 삼양에프앤비 등)과 화학(삼양사, 삼양패키징, 삼양이노켐, 케이씨아이)의 양대 주력 사업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두드러진 성과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실적이 나빠지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삼양홀딩스는 지난해 매출액 3조3168억원, 영업이익 1323억원, 당기순이익 1058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이하 K-IFRS 연결). 전년비 매출액은 6.7% 증가하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62.4%, 61.4% 감소했다.
수익성이 악화된 것에 대해 삼양홀딩스측은 "자회사 삼양이노켐의 당기순이익 감소로 삼양홀딩스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삼양이노켐은 김윤 회장이 밝힌 신성장 동력의 하나로 전자제품부터 의료용품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PC(폴리카보네이트) 원료인 BPA(비스페놀A), 석유화학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 소재 ISB(이소소바이드)를 생산한다.
삼양이노켐은 지난해 매출액 3859억원, 영업이익 371억원, 당기순이익 23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각각 31.3%, 86.7%, 89.9% 감소했다. 삼양홀딩스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삼양이노켐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삼양이노켐은 삼양홀딩스와 일본 미쓰비시(Mitsubishi Corporation, 이하 미쓰비시)의 합작투자로 지난 2009년 10월 27일 설립됐다. 이후 BPA 공급 과잉에 따른 업황 악화로 경영이 나빠지자 지난 2014년 3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섰다. 그렇지만 미쓰비시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며 삼양이노켐에서 손을 떼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지난해 주식 양수도 계약에 따라 삼양홀딩스는 단독주주로 삼양이노켐을 떠안게 됐다.
◆소수 지분의 '가족 경영' 지배구조, "신속한 의사결정 어려울 수도"
삼양그룹의 특징이자 개선점으로 '돌다리도 두드린다'는 보수성이 지적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OCI(회장 이우현)는 일찌감치 리스크를 감수하고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어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 38위로 전년비 5계단 점프했다. OCI는 기업 이름도 고색창연한 동양화학공업에서 과감하게 바꿨다. 동일한 B2B 사업모델을 갖고 있으면서도 혁신과 성과에서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다.
삼양그룹은 지분구조가 다수에게 분산돼 있다. 삼양그룹의 지분구조를 살펴 보면 6% 미만의 '김씨 가족'에 분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지분 분산은 상호견제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한계도 갖고 있다.
김연수 창업주의 삼남 고 김상홍(1923~2010) 회장이 동생 김상하(1926~2021)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고, 김상하 회장이 김윤 회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김윤 회장은 2004년부터 삼양그룹 총수를 맡고 있다. 김윤 회장의 장남 김건호 삼양홀딩스 상무가 4세로는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건호 상무는 1983년생으로 미국 리하이대를 졸업했고 JP모건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다 2014년 삼양홀딩스에 입사했다. 김건호 상무의 남동생 김남호씨는 1986년생으로 학업중이다
삼양홀딩스는 “계열사들의 사업 확장 및 수익성 업그레이드를 통해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