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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전 한국중재학회장] 화가 거람 김반석의 꿈 그림은 매우 특징적이다. 한글 ‘꿈’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그림화한 것도 특이하지만 그가 긋는 T획의 길이는 유난히 길다.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무사히 노인에 이른 것에 늘 감사하는 필자는 꿈의 크기와 길이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꿈 그림이 마음에 깊이 와 닿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거람 김반석(뒷줄 왼쪽 다섯번째) 화백이 학생들과 꿈 그림을 두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율산광역시교육청]트로이 유적의 발굴자 하인리히 슐리만 (Heinrich Schliemann, 1822 ~ 1890) 의 이야기는 사람이 가지는 꿈의 길이에 대하여 언제나 영감을 준다. 슐리만은 무일푼에서 무역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뒤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한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트로이라는 도시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슐리만이 갓 여덟 살이 될 무렵에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 라는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주었다.


이 책에는 거대한 트로이의 성벽과 불타는 도시 트로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 만일 정말로 그런 성벽이 옛날에 있었다면 완전히 없어질 리 없어요. 틀림없이 그건 몇 백 년 동안 흙 먼지에 묻혀 있을 거예요.” 이 단순한 호기심이 거대한 역사의 현장을 발굴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 에는 트로이가 몰락할 때 유일한 생존자인 트로이 왕족 아이네아스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아들과 함께 불타는 트로이를 빠져나오는 장면이 그려진 삽화가 실려 있었다. 이 삽화가 어린 슐리만이 트로이 발굴을 결심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꿈이란 대체로 우연히 시작된다.


슐리만의 아버지는 어린 슐리만이 거대한 트로이 성벽이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자 언젠가 슐리만이 직접 트로이를 발굴하는 데 동의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어린 아들의 생각을 어른의 상식으로 비웃거나 핀잔을 주어 아들의 기를 꺾어버리는 우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아들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생각을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매우 신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슐리만의 연표를 보면, 대략 여덟 살에 시작된 그의 꿈은 49살이 되어 제1차 트로이 발굴을 시작하면서 실현되었고, 68살이 되어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고대에 대한 열정(1997). [자료=인터넷검색]

필자에게 삶은 늘 신비하다. 사람이 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꿈이 사람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필자가 체험하고 관찰한 삶의 신비로운 모습이다. 개인이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 꿈이 그 개인을 만들어 낸다. 가슴 속에 분명한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언제나 기댈 미래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꿈은 사람에게 삶의 목표를 제공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힘들어도 끝까지 고난을 이겨낸다. 입을 옷조차 변변치 않았던 슐리만은 열심히 노력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공부에 전력을 다했다. 특히 그는 외국어 공부에 열심을 내었다. 결국 15개국의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는 상인으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슐리만의 자서전인 《고대에 대한 열정》 에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행운으로 얻은 사환 일을 하면서 암스테르담의 난방도 없는 추운 다락방에서 싸구려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시간을 아껴 영어 공부를 하는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외국어 공부가 귀찮고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15개국 언어를 정복한 슐리만의 외국어 공부 방법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슐리만은 삶 전체를 통하여 사람에게 꿈이 있고, 그 꿈이 지속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마음 속에 영롱한 꿈을 가지면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꿈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들이 여섯 살 때 주식 통장을 선물해 아들에게 투자에 대한 꿈을 키워준 아버지가 있다.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은 그런 아버지 덕분에 11살에 처음으로 주식을 사서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 금융시장을 경험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가치투자의 대가가 되었다.


가치투자에는 복리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일찍 투자를 배우고 시작할수록 결과가 좋아진다. 우리나라에는 주식투자를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생각하여 심지어는 재무학을 가르치는 교수조차 자식에게 주식 투자를 권하지 않는다.


그 결과 공부가 없는 젊은이들이 무모하게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투자를 해서 좌절한다. 2021년 5대 증권사의 신규계좌 723만 개 중 54%가 2030세대의 것이었다. 급기야 〈’영끌’ 투자로 빚더미에 앉은 2030, 국가적 문제될 것〉 이라는 사설이 나오고, 영끌 투자를 걱정하는 기사들이 거의 모든 신문을 도배하는 지경이 되었다. 나라 전체가 금융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투자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필자에게 정말 믿어지지 않는 스토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버핏이 11살 때 생애 첫 주식을 사면서,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주식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한지도 벌써 5년이 넘었기에 이제 주식을 사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 ‘아버지 저도 주식을 사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 주식에 투자하려는 돈은 여섯 살 때부터 꼬박 5년 동안 모은 돈이었다.” 라는 것이다.


워런 버핏 이야기 (2009). [이미지=예스24]

어른이나 할 만한 행동을 어린 버핏이 했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스토리를 쓴 작가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서 믿지 않기도 쉽지 않지만, 버핏의 아버지는 주식 중개인이었고, 아버지의 서재에는 주식에 관한 책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11살이 된 버핏이 주식 책을 읽었다는 것을 믿어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버핏이 10살이 되었을 때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서 당시 가장 큰 주식 중개회사로 꼽히는 회사의 사장을 만나게 해주었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점심도 함께 먹었다. 우리나라와는 접근방식이 사뭇 달라 보인다.


주식전략가 김철상은 기업의 성장과 가치를 판단하고 그 기업과 동업하는 자세로 가치투자를 하면, 세상의 믿음과는 다르게, 기업과 투자자 모두 40년 이상 윈윈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오랜 연구와 경험의 결과이다. 필자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가치투자에 관한 꿈은 40년 이상 길게 가져가야 빛을 본다. 꿈의 T획을 길게 그어야 하는 영역이다. 청년들이 금융 문맹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일찍부터 제대로 된 투자교육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꿈은 귀하다. 세상은 아이들이 꿈을 가지도록 장려해야 한다. 꿈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꿈을 길게 가져갈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일도 필요하다. 큰 꿈이든 작은 꿈이든 그 꿈을 길게 가져갈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


선한 꿈을 길게 가져가는 것, 더 나아가 평생을 가져갈 꿈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하는 것, 이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가와 사회는 번영할 것이다. 미래가 밝을 것이다.


꿈의 T 획을 길게 그려내는 거람 김반석 화백의 독창성은 시각적으로 꿈의 길이를 확대시켜준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꿈의 길이를 아이들 앞에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화가 김반석은 너무 쉽게 이 일을 해내고 있다.


한글 꿈이라는 글자가 품고 있는 오묘한 이치와 한국적 문화인 솟대를 결합시킨 그의 예술적 독창성은 그 가치를 숫자로 계산하기 어렵다. 100만 명의 아이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꿈의 길이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면, 100만 명 아이들의 삶이 풍성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속한 사회와 국가에도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창출될 것이다.


다행하게도 작년(2022년)에 울산의 염포초등학교에서 울산 출신인 거람 김반석 화백의 재능기부를 받아서 학생들의 꿈을 전시하는 ‘꿈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거람 김반석 화백이 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울산광역시교육청]

그는 노대가 답게 아이들 앞에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꿈이라는 글자의 그 긴 T획을 종횡무진으로 거침없이 그어내려 갔다. 아이들은 놀라고 신기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의 특이한 예술 행위는 아이들에게 긴 꿈도 흔들림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꿈 프로젝트’ 행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교의 관계자들은 인간의 삶에 꿈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엉뚱한 이념으로 일그러져가는 교육 현장에 이런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실로 든든하다.


새해가 되면 가족 구성원들이 한 해의 꿈을 적고, 가족의 꿈도 함께 메모하는 가정이 더러는 있을 것이다. 슐리만의 아버지나 워렌 버핏의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아버지는 지혜로운 아버지다. 아이들이 가지는 꿈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사회가 나서 볼 만한다. 2023년에는 꿈의 훈풍이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불어올 것을 기대해 본다.


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전 한국중재학회 회장). [사진=더밸류뉴스]

저작권자 Ⓒ 윤진기.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출처를 표시하여 내용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원문은 버핏연구소 윤진기 명예교수 칼럼 ‘경제와 숫자이야기’ 2023년 01월 08일자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원문에는 각주가 부기되어 있으며, 각주에서 인용자료의 출처와 추가적인 보충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원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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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20 17: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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