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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민준홍 기자]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를 나와 건국대 캠퍼스를 걷다 보면 이 대학의 상징물로 자주 등장하는 널찍한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호수 이름은 일감호(一鑑湖).


2만평 가량의 넓은 면적에 왜가리와 백로가 눈에 띄고 호수물에는 자라, 배스, 붕어 등이 서식하고 있다. 호수 안에는 와우도라는 무인 인공섬도 있다. 


복잡한 빌딩숲과 상업시설로 둘러싸인 시내에 보기 드문 자연 공간이다 보니 이 호수는 재학생은 물론이고 주변의 시민들의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전공책을 뒤적이며 여유롭게 거니는 학생들, 벤치에 앉아 사색하는 교직원, 자녀와 함께 산책하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 '일감'이라는 호수 이름은 송나라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한시에 나오는 ‘일감(一鑑)’에서 유래했다. '거울같이 맑은 호수’라는 의미이다. 


서울 화양동 건국대 캠퍼스 내 일감호. 구멍이 뚫린 교량이 홍예교이다. [사진=더밸류뉴스]

이 대학의 상징물이자 학생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이 곳은 그렇지만 자칫 세상에 등장하지 못할 뻔 했다. 


이 호수는 건국대 설립자인 상허(常虛) 유석창(1900~1972) 박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상허 유석창 박사. 

독립운동가, 의사, 교육자이던 상허는 건국대를 독립운동과 애국의 한 방식으로 생각했다. 그는 "캠퍼스에 강의하는 건물도 필요하지만 자연을 통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호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렇지만 일부 교수와 교직원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호수 축조에는 적지 않은 경비가 소요되는데 차라리 강의나 연구를 할 수 있는 건물에 투자하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것이었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캠퍼스 내 일감호. [사진=더밸류뉴스]

상허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건국대 캠퍼스는 학생들이 마음껏 젊음을 불태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라며 "그러자면 정의로움을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고 뻗어가는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고 설득했다. 


건국대 지도. [사진=더밸류뉴스].

일감호(一鑑湖)는 맑은 물이 흘러야 호수가 맑듯이 학문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의미다. 유석창 박사는 학생들이 넓은 마음을 가지면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를 원했다. 


상허의 제안이 결국 받아 들여져 지금의 일감호는 탄생했다. 


상허는 일감호의 설계와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그는 학생들이 일감호를 통해 우리나라의 화합 정신을 깨닫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일감호를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었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위치에 '홍예교'를 만들어 당시 갈등이 적지 않았던 두 지역의 화합을 상징했다. 또, 고구려 수도인 평양에 '와우도'를 만들어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했다. 와우도(臥牛島)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띄고 있다. 


건국대 일감호 와우도(臥牛島). [사진=더밸류뉴스]

일감호라는 인공호수가 가능했던 것은 원래 이 일대가 조선시대에 말을 키우던 목장의 습지였는데 습지를 정리하면서 그 물길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앞의 상허 유석창 박사 동상. [사진=더밸류뉴스]

상허의 선견지명 덕분에 이제 일감호는 건국대 상징물이자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학교법인 건국대는 지난 5월  ‘학원창립 9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건국대는 상허가 1931년 의료제민의 뜻을 갖고 ‘사회영 중앙실비진료원’을 개원하면서 시작됐다.


junhong29@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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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18 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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