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난 한 번이라도 행복하고 싶은데, 왜 나 꽈찌쭈(권진수)는 행복할 수가 없어!”
혹시 십여 년 전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 <로스트> 속 명대사를 기억하는가? 드라마를 보지 않았더라도 내 또래라면 이 대사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설픈 한국어로 대사를 외치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짠한 것이 포인트다. 지금까지도 삶이 하드코어하게 흘러간다 싶으면 혼자 있을 때 이 대사를 읊조리곤 한다. 불평 한 번으로 속이 후련해지면 좋으련만, 불평 후엔 자연스레 인생을 돌이켜보며 나를 괴롭혔던 모든 우울한 사건들을 질겅질겅 곱씹는 시간이 따라온다.
어린 시절 가족 간에 불화가 있었고, 열심히 준비한 시험은 죽 쑤고,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는 날 떠나가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인생 동안 차곡차곡 쌓인 불행한 기억을 파헤치며 내 신세를 한탄한다. 그렇다고 우울함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은 않는다. 나름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좋아하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고,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밀린 잠도 자 보고, 애인 혹은 친구들과 근사한 데이트를 즐겨본다. 속 편히 행복을 누려보려 해도 내 계획과 달리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끝없이 찾아온다. 이윽고 ‘도대체 왜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삶을 살아 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당도한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묻는다, 인생이 정말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 것이 맞냐고.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는 제목처럼 완벽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조금 다르게 보자고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서 즐거운 일만 가득한 하루를 꿈꾼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이 매끈한 도자기처럼 흠 하나 없이 행복하기만 할 수 있는 것이 맞을까? 이 책의 저자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이두형은 말한다. 행복하기만 한 평탄한 인생은 없다고.
때로 삶이 마음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은 아픔이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나와 내 삶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본질임을 이해해주자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나를 감싸주고 안아주자는 것이며, 그 위로를 힘으로 삼아 원하는 삶을 이어가자는 것이다. _ 책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중에서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행복을 좇을 때 우리는 더욱 불행해진다. 행복하지 않은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내가 문제가 있어서, 덜 노력해서 내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힘든 나의 삶에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면서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아이러니가 아닌가. ‘인생은 행복과 불행은 뒤엉켜 있는 것이다.’ 이 인생의 진리를 받아들이자. 그 순간, 마법처럼 내 삶에 산재한 불행이 눈 녹듯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대신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짐 하나가 덜어져 훨씬 가뿐해질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수용전념 심리학의 자세에서 ‘수용’에 해당하는 자세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가만히 두고 자신을 보듬어 주는 자세를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친다.
때로 느슨하게 잡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더디거나 어긋나더라도 원하는 삶으로 다가가는 그 길을 꾸준히 나아가는 것, 모든 것이 생각대로만 이뤄질 수는 없는 삶을 살아가며 추구하는 행복의 원리다. 지금 우리의 최선으로, 가능한 만큼으로. _ 책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중에서
삶에 대한 엄격한 조건을 내려놓고 나면 비로소 나만의 행복을 찾을 단서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 삶에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들, 그 소소한 단서에 집중하여 흠결투성이인 내 삶 속에서도 기어이 행복을 찾아내는 자세가 전념이다. 저자는 조금 느슨하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현재에 집중하자고 얘기한다. 이를 위해 ‘수용전념 심리학’의 여섯 가지 기둥 ‘수용-탈융합-현재와의 접촉-맥락으로서의 자기-전념-가치’를 소개한다. 여섯 기둥을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는 렌즈를 바꾸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매몰되었을 때는 미처 찾지 못했던 오늘의 행복을 좇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힘들지 않기 위해’ 투쟁하며 살지 않는다. 꾸준히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간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 나만이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가치를 쌓아간다는 자각과 함께. 그 과정에서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아픔의 순간, 늘 수반되는 일상의 고됨 역시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느낄 뿐이다. 그뿐이다. _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중에서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면 좌절하지 말자. 남들과 달리 유독 내 인생 여정만 더 구불구불한 것 같더라도 괜찮다. 모든 삶은 그렇게 굽이치며 흘러간다. 때때로 힘든 시간이 찾아오면 불편한 감정이란 풍랑에 몸을 맡기자. 대신 틈틈이 나만의 작은 보람과 행복 조각들을 하나둘 모으는 일만은 포기하지 말자. 그 조각들이 모여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럼에도 살아야만 하는 의미’라는 밧줄이 되어 괴로움에 쉽게 떠내려가지 않도록 잡아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