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비자들의 식품 트렌드는 단연 ‘비건’(Vegan·채식주의)이다. 환경과 건강에 관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비건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에 국내 식품기업들이 비건 브랜드와 제품을 론칭하며 ‘비건전쟁’을 펼치고 있다. '가치소비'와 '맛' 두 마리 토끼를 충족시킬 비건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체육 시장 연 5.6%↑… 국내 채식 인구 150만
비건은 육류 등 동물성 원료를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Vegetarian)에서 유래됐다. 최근에는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 모피∙가죽 등 동물 유래 제품까지 사용하지 않는 생활 개념으로 확산됐다. 국내에서 통칭하는 비건식품은 대부분 ‘식물성 대체육’으로 콩, 깨, 대두 단백질 등을 주원료로 이용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비건식품에 대한 관심이 확대됐다. 2016년 1410만 달러 규모이던 국내 식물성 대체육 시장은 2020년 1740만 달러(약 208억원)로 23.70% 증가했다. 2016년 이후 연평균 5.6% 성장한 것이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25년 2260만 달러(약 271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 15만명이던 국내 채식 인구는 2020년 약 150만명으로 늘었다.
이에 중소기업 중심이던 비건시장에 대기업들이 진출했으며, 자체 브랜드를 런칭하는 등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유통채널인 이마트와 롯데마트에서도 ‘채식주의존’, ‘비건 특화존’ 등을 운영하고 있다.
◆농심, 비건 레스토랑 ‘포레스트 키친’ 오픈… 오뚜기∙풀무원도
비건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기업은 농심(신동원 회장)이다. 지난해 1월 대체육 제조기술을 활용한 ‘베지가든’ 브랜드를 론칭하고, 신동원 농심 회장이 야심작으로 준비한 비건 레스토랑 ‘포레스트 키친(Forest Kitchen)’을 올해 오픈했다. 포레스트 키친은 현재 주말 예약률 100%를 기록하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농심의 주 제품군이 라면과 스낵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대체육 시장에 대한 농심의 투자는 괄목할만하다.
풀무원(대표이사 이효율)도 비건 인증을 받은 레스토랑 ‘플랜튜드’를 선보이며 비건 외식 수요 잡기에 나섰다. 풀무원은 대체육, 두부 등을 활용한 식물성 제품을 다수 출시해왔다.
CJ제일제당(대표이사 최은석)은 지난해 12월 식물성 식품 브랜드 ‘플랜테이블(PlanTable)’을 론칭하며 비건 만두를 선보였다. 국내 출시 두 달여만에 28만봉 이상 판매되며 기대치를 상회했고, 호주∙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10개국에 수출하며 날개를 달았다. 이재현 CJ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경영리더가 직접 사업을 이끌고 있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복귀 1년만에 임원으로 깜짝 승진했다.
동원F&B(대표이사 김재옥)는 일찌감치 친환경 먹거리에 주목했다. 2019년부터 미국 대체육 업체인 ‘비욘드미트’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어 국내에 판매했다. 대표제품인 ‘비욘드버거’는 국내에서 지금까지 15만개 이상 판매됐다. 동원F&B의 새 비건 브랜드 출시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 5월 동원F&B가 ‘넥스트미트’와 ‘그린미트’에 대한 상표권을 출원했기 때문이다. 식물성 대체육이 연상되는 상표명인 만큼, 비건 브랜드 출시 여부가 주목된다. 다만 동원F&B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자체 브랜드 계획은 없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출원이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새 브랜드를 런칭하며 비건 전쟁에 합류한 기업들도 있다. 오뚜기는 ‘헬로베지’ 브랜드를 통해 비건 카레와 짜장 제품을 선보였으며, 풀무원 역시 새 브랜드 ‘식물성 지구식단’ 런칭을 계획 중이다.
◆’가치소비’로 비건 트렌드↑… 시장 포화 우려도
비건식품이 각광을 받은 이유로는 소비자들의 ‘가치소비’ 성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치소비란 소비자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만족도를 기반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을 뜻한다.
코로나19 이후로 환경과 건강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심이 증대되면서 비건을 통한 가치실현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건강관리를 즐겁게 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도 영향을 미쳤다. 비건식품을 통해 건강한 식사를 하고, 동물 학대∙탄소 배출량 증가 등의 문제를 인식하고 탈피한다는 것에서 소비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NRDC)에 따르면 소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25.6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비건이 곧 환경보호와 직결되는 이유다.
국내 ‘비건전쟁’의 승기를 잡을 키포인트는 역시 ‘맛’으로 평가된다. 비건식품 구입시 고려 1순위는 '맛'이었고 이어 ‘가격’과 ‘좋은 재료’ 순이다. 대체육과 빵류는 ‘맛’에 따른 구매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맛의 변별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제품, 면류는 가격 고려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비건 대중화를 위해서는 맛과 가격의 개선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소비에 가치를 투영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일반 식품과 비교해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20대 소비자 A씨는 “비건 식품이 대세라고 해서 마트에서 구입해서 먹어봤는데 일반식품 대비 맛이 떨어져 실망했다”며 “가치소비 자체는 좋지만, 가격도 비싼 편이라 자주 구매할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건시장 과포화 우려도 제기된다. 비건 시장 규모에 비해 경쟁이 과열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비건 브랜드를 출시한 식품기업들은 비건인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런칭하고 있다. 국내 비건 인구가 증가하긴 했지만, 완벽한 비건인구는 아직 50만명으로 추산돼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가치소비 트렌드에 따라 주목은 받지만, 이미 기존 식품의 맛에 익숙해진 국내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식품업계의 관계자는 “비건 시장의 규모 대비 많은 브랜드들이 진출하며 경쟁 우려가 빚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대체육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R&D(연구개발)로 경쟁력도 강화되고, 비건 식품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