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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문성준 기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울 경복궁에서 북쪽으로 험한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운전하다 보면 문득 눈앞에 펼쳐지는 ‘청운공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 


이 언덕에는 '국민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서시'가 새겨져 있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고, 서시는 '윤동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이다. 학창 시절 무미건조한 내용의 교과서를 뒤적이다 문득 접하는 '서시'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됐던가.


서울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새겨진 ‘시비’(詩碑)’. [더밸류뉴스]

윤동주 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이곳에서 멀지 않은 종로구 누상동의 후배 소설가 김송(1909~1988)의 집에서 하숙했다. 평소 공부를 하거나 시를 쓰다가 산책을 즐겼던 그는 청운동과 누상동 일대를 산책하며 시상을 가다듬었다.


서울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걷다 보면 저 멀리 서울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사진=더밸류뉴스]

김송의 집에 머문 기간은 4개월로 길지는 않지만 윤동주 시인의 28년 짧은 인생에서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로 여겨진다. 시를 쓰다가 마음이 복잡할 때면 깊은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후배와 함께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뛰어난 성악가인 김송 아내의 노래를 감상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서시’는 이때 탄생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시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해지는 노을 아래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조국의 빛바랜 모습에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밤하늘의 별을 마음속에 간직했다. 청운공원 언덕에 윤동주 시인의 이름이 붙여지고 ‘서시’ 시비가 세워진 이유다.


서울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 기념석 옆 소나무. [사진=더밸류뉴스]

이 곳 청운동 언덕 일대는 서울 도심에 이런 한적한 공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적막하다. 기념석 옆 노송(老松)이 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조국 광복을 6개월 남짓 두고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쓰러져 '하늘의 별'이 됐다. 그가 쓴 ‘서시’는 사후에야 발간됐다.


a854123@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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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30 16: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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