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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조창용 기자]

                     조창용 더밸류뉴스 편집국장 은행들의 '두 줄타기 곡예'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코로나19 재확산이 2차 팬더믹 양상으로 흐르자 다급해진 정부는 1차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홀쭉해진 정부 곳간을 메우고자 민간 곳간을 통제하고 싶어졌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 사업에 기업은행,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물론,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의 협조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긴급 자금지원 여력을 확보해두기 위해 은행들의 중간배당 행사를 억제하는 한편, 부동산 정책으로 개인담보대출 등을 틀어막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민간 금융사 통제는 '관치금융'의 버릇이 도진 것으로 이제는 시중은행들이 이에 대한 면역성(?) 덕분에 잘 따르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지혜를 발휘, 한발은 '협조' 동아줄에 한발은 '비협조' 동아줄에 둔채 두 줄 사이를 교묘히 옮아가면서 '예술적 경지'에 이른 처세를 나타내고 있다.


은행들은 "중간배당을 자제해 달라"는 금융당국의 경고에도 꿋꿋하게 중간배당에 나서고 있다. 평소 금융당국의 눈치를 많이 보는 금융사들이 왜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중간배당에 나서고 있을까?


최근 금융사의 중간배당을 둘러싼 금융당국의 분위기는 점점 엄중해지고 있다. 지난 4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지난달 은성수 금융위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 직접 나서서 한 목소리로 금융사의 중간배당 자제를 압박하고 있을 정도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여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스스로 자본건전성을 지키라는 취지로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말이 권고이지, 사실상 경고에 가깝지만, 은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지 불과 2주 만에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중간배당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자본건전성(?)을 걱정하는 금융당국과 달리, 하나금융은 15년 간 지켜온 주주와의 약속이라며, 이미 손실흡수능력을 키웠고 비은행 부문 위주로 중간배당을 진행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어 국민은행도 지난 27일 중간배당을 결정했다. 국민은행이 중간배당을 실시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중간배당을 하필 금융당국의 자제령 이후 실시하게 되면서 배당금이 어디로 갈지가 주목됐다. 총 5984억원 규모인 이번 배당금 전액은 오는 31일 납부를 앞두고 있는 KB금융지주의 푸르덴셜생명 인수자금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이 푸르덴셜생명 지분 인수 관련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은 게 지난 4월인 만큼, 금융당국도 이미 진행 중인 인수를 위한 중간배당에는 특별한 제한을 두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배당 자제 권고에도 금융권들이 연이어 중간배당을 실시하자, 업계에서는 은행 배당을 제한하는 제도 도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은행의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이 절실한데, 배당 정책을 고수하다가 자본 부족현상이 일어났을 때 미칠 파급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업계는 당초 배당성향이 높은 편인 은행주의 경우 배당이 주가 상승의 동력이 되기도 했던 만큼, 배당 축소가 투자자 이탈과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어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편, 이와 달리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대체로 호응하는 편이다. 저금리로 인해 아파트 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투기의 주범이란 정부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자 은행 창구에서 고객들의 개인담보대출 승인이 까다로와 졌다. 


28일 위키트리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직장인 전용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NH농협은행 직원 A씨가 점심시간에 대출을 하러 온 고객에게 화가 나 대출을 거절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A씨가 근무하는 농협은행 지점의 지점장 팀장도 이런 A씨의 행동을 은근히 칭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역으로 요즘 은행 창구에서 고객들의 대출이 막혀버린 상황을 짐작케 한다. 


비단 농협은행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시중은행 중 유독 농협은행이 정부의 시책에 잘 따르고 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그만큼 농협의 구조상 금융부문의 역할이 순수한 농업 지원이나 농민들의 금융에 도움이 되기 보단 정부의 정책적인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왜냐하면 다른 시중은행들이 시행하고 있는 중간 배당 등 투자자 주주들을 위한 자본시장의 원리들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협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들도 창구에서 부동산 관련 대출 억제가 이뤄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들 은행들은 앞서 언급한 인수합병을 위한 현금확보 차원의 중간 배당 실시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에 농협처럼 오로지 정부의 외줄에 의지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친 셈이다. 이런 점은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은행자본의 건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은 생리상 구속을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creator20@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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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8-29 04: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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