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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한국형 R&D 통한 제약강국’ 산파역 - "R&D는 나의 목숨과도 같다"...1973년 한미약품 창업 후 매출 1조원대 회사로 육성
  • 기사등록 2020-08-02 16: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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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조창용 기자]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거인인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0세.


한미약품 송파구 본사 사옥과 故 임성기 회장 [사진=더밸류뉴스]故 임성기 회장은 1940년 3월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했다. 중앙대 약대 졸업 뒤 1967년 서울 종로에 ‘임성기약국’을 열었다.


이후 1973년 한미약품(128940)을 창립해, 오늘날 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로 키워냈다.


그는 ‘한국형 R&D 전략을 통한 제약강국 건설’이라는 꿈을 품고 48년간 한미약품을 이끌며 일생을 헌신했다. 제약기업이 신약개발 역량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믿고 매년 매출의 20% 가까이 R&D에 투자했다. 그 결과 한미약품을 국내 최고 신약 개발 제약사로 키워냈다.


한미약품은 매년 매출액의 최대 20%에 이르는 금액을 혁신 신약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한미약품이 최근 20여년간 R&D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약 2조원에 달한다.


이런 일관된 회사의 행보는 "R&D 없는 제약기업은 죽은 기업, R&D는 나의 목숨과도 같다"고 주창한 임 회장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故 임 회장은 회사의 살 길이 집중적인 R&D 전략에 있다고 판단했다. 단기적으론 개량신약을 개발하고 장기적으로는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 결과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개량신약 ‘아모잘탄’ ‘아모디핀’ 등을 선보였다. 2013년에는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에소메졸’로 국내 개량신약 최초로 미국에서 시판 허가를 받았다.


지난 1989년에는 국내 제약사 최초로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다국적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의 개량 제법에 관한 기술을 수출했다.


故 임 회장은 대다수 제약회사가 매출의 5~7%를 R&D 비용으로 지출하던 때, 이미 10% 이상을 쏟으며 신약개발 의지를 키워왔다. 최근 10년 동안 20% 가까이 꾸준하게 투자하며, 제약회사 중 가장 많은 R&D 비용을 투자했다.


그 결실은 국내 제약업계의 지도를 크게 바꿨다. 지난 2015년 시작된 한미약품의 조 단위 기술수출은 신약을 끝까지 개발하지 않아도 계약금 수익을 얻을 수 있고, 단계에 따라 기술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미약품의 신화를 목도한 제약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고, 오늘날 ‘K바이오’라고 불릴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실패에도 R&D 의지를 꺾지 않았다. 글로벌 제약사와 9건에 달하는 기술수출 계약을 이뤘지만, 2015년 이후 성사시킨 계약 6건 중 5건이 해지됐다. 그는 폐암 신약 올무티닙 개발이 좌초됐을 때 “신약 개발에는 어려움도 있고 위험성도 있지만, 나를 믿고 R&D에 더 매진해 달라”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영숙씨와 아들 임종윤∙임종훈씨, 딸 임주현씨가 있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확정되는대로 추후 알릴 예정이다. 발인은 오는 6일 오전이다. 유족측은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creator20@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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