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이 HCN 매각 자금을 어디다 쓸지를 두고 일각에서 정지선·정교선 두 오너가 '형제경영'을 지속하되 '경영분리' 방식을 취한 형태의 현대백화점 분리를 실행하는 신호탄으로 보고있다. 굳이 '경영분리'를 원하는 까닭은 두 형제 계열사간 '내부거래'가 심각하기 때문. 이를 해소하기 위해 HCN 매각도 서둘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9일 현대백화점 등에 따르면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최근 HCN 매각 대금으로 받은 1조원 이상 현금을 통해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와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분야로 M&A를 추진할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추진 중인 SK바이오랜드 인수건 역시 현대HCN이 주축이 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 동안 많은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정 회장은 2010년 현대백화점그룹 창립 39주년을 맞아 열린 비전 선포식에서 “대규모 M&A 등을 통해 그룹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사업을 적극 발굴하고 검토하겠다”고 직접 언급하는 등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실제로 정 회장은 2010년 들어 거의 1년에 1개꼴로 기업을 사들여 왔다. 2012년에는 패션기업 한섬과 가구업체 현대리바트를 인수했는데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의 가장 큰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외에 2011년 LED조명업체 반디라이트(현대LED), 2013년 식품 가공업체 씨엔에스푸드시스템, 2015년 건설·중장비업체 에버다임(940억원), 2018년에는 건자재 업체 한화L&C(현 현대L&C)를 품으며 전방위로 사업 영토를 확장했다. 최근에는 기능성 화장품 전문기업 ‘클린젠 코스메슈티칼’의 지분 51%를 인수해 화장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한편,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2018년부터 그룹내 순환출자고리 해소에 나섰다. 동시에 정지선 회장이 백화점 등 유통사업을,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 현대그린푸드의 식품사업 등 비유통사업을 맡게되는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 두 회사를 중심으로 형제경영을 시작한 셈이다.
당시 재계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오너일가의 지분변동을 예상했다. 현행법상 오너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 기준 내부거래 200억원 이상, 매출의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현대그린푸드의 경우도 내부거래 규제대상이 된 상태였다. 현재 정 회장 형제를 비롯한 오너일가는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38.4% 보유 중이다. 내부거래로 올린 매출액은 최근 3년간 줄곧 2000억원을 상회했다.
현대그린푸드가 신사업을 추진하며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너일가의 지분조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중론이었다.
여기서 계열분리 시나리오도 제기됐다. 정지선 회장이 현대그린푸드 지분 약 12%를 매각하고 현대그린푸드가 갖고 있던 현대백화점 지분을 매입한다면 일감 몰아주기 해소와 함께 계열분리는 물론 향후 승계작업도 원활해진다는 평가다. 일석이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설사 계열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로 또 같이’ 차원의 경영분리는 확실하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정 회장이 현대그린푸드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사내이사직을 유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는 설명이다. 정 부회장 역시 지난해 현대백화점 사내이사로 선임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은 각자 사업영역을 존중하면서 연결고리는 끊지 않는 형제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내부거래 문제가 얽혀있는 가운데 HCN 매각 자금으로 어떤 해법을 꺼낼지 주목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